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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r 22. 2020

나이로비에서 케냐 AA를 맛보다

2020. 2. 15.

나이로비에서 케냐 AA를 맛보다. 


오늘은 케냐로 가는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하늘만 어슴프레 밝아오는 캄캄한 길을 타타가 케냐 국경을 향하여 달린다. 캄캄한 트럭 안에서 가방을 더듬어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머라이어 캐리의 ‘Without you’가 흘러나온다.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당신에게 더 드릴수가 없잖아요.’


친구 성기가 심근경색으로 뇌사 성태에서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산길을 걸으며 "사는 게 뭐 별거야.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뭐" 하던 성기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그래 사는 게 별거 아니니까 함께 더 누리며 더 살아야지. 빨리 툭툭 털고 일어나렴. ‘Without you’가 끝나고 베빈다의 ‘스무 살이 된다면’이 그녀의 축축한 음성으로 가슴으로 파고든다. 스무 살이 지난 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스무 살이 되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날이 밝으면서 멀리 창밖으로 킬리만자로의 정상 우후루 봉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내니 더 신비스러운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 모습도 불과 몇십 초 만에 몰려드는 구름에 감추어 버렸다.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킬리만자로 정상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출발한 지 두 시간 케냐와 탄자니아의 나망고 국경에 도착했다. 이곳은 다른 나라와 달리 탄자니아와 케냐의 출입국 사무소가 같은 장소에 있다. 탄자니아 출국신고를 하고 바로 옆 창구에서 케냐 입국신고를 한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빨리 출입국 수속이 마무리되었다. 케냐 국경을 지나도 도로 주변 풍경은 변함이 없다. 야트막한 구릉지로 된 초원이 이어지고 멀리 산들이 구름에 싸여 있다. 이제 두 시간 정 도면 나이로비에 도착한다. 탄자니아 아루샤 캠프를 출발한 지 5시간 나이로비가 가까워지니 주변 풍경이 바뀐다. 현대식 건물이 더러 보이고 대학 캠퍼스도 있다. 간혹 크지는 않지만 공장도 보인다. 주거용 가옥은 유럽풍으로 지어졌다. 


드디어 나이로비 갤러리아 쇼핑센터에 도착했다. 오후 12시 반이다. 탄자니아 아루샤를 출발한 지 6시간 반 만이다. 국경에 출입국자들이 많으면 더 걸렸을 텐데 다행히 밀리지 않아 시간을 많이 단축했다. 함께 지낸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ATC 크루들에게는 약간의 팁을 주면서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43일간 트럭을 타고 8개국을 방문한 여행이 마무리되어 홀가분하다. 안전하게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안심이 되며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제부터 급한 일은 심카드를 사서 앱으로 우버 자동차를 부르는 것이다. 며칠 전 예약해 둔 한국 민박집을 찾아가야 한다. 2GB에 7일 유효하고 통화도 가능한 유심카드를 샀다. 탄자니아처럼 세팅할 필요 없이 심카드를 전화기에 끼우니 바로 데이터 사용이 가능하다. 이제는 한나라의 문화에 대한 척도가 이런 데이터 인프라로 판단할 수 있다. 데이터 전송속도도 무척 빠르다. 역시 케냐의 수도이다. 쇼핑몰을 기웃거리다가 식당가에서 중국식 볶음밥을 시켰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은데 쌀이 풀풀 날아다닌다. 그래도 오랜만에 먹는 볶음밥이니 괜찮다. 우버를 부르니 금세 온다. 이런 편리한 서비스를 우리는 못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정치하는 친구들에게 또 욕이 나온다. 


예약해놓은 곳은 나이로비 이주열 게스트 하우스다. 도착해보니 3층 가정집인데 부유층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집주인은 없고 가정부들만 있다. 짐을 풀고 빨랫감을 주고 샤워를 하고 나니 오후 3시 반이다. 커피 본고장에 왔으니 커피맛을 보고 싶어서 물어봤더니 커피 커넥트란 카페를 소개해준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지 가정부 마기가 잘 알고 있다. 전화까지 해준다. 또 우버를 불렀다. 금세 문 앞으로 왔다. 10분 거리의 카페 커피 콘넥트에 가서 전화받은 친구를 찾으니 케빈이다. 나를 데리고 5층 커피 로스팅하는 곳으로 안내해서 설명해주고 3층 커피 아카데미도 보여 준다. 1층 카페로 내려와 케빈이 드립으로 내려주는 케냐 AA 한잔을 마셨다. 커피가 냄새가 구수하고 맛이 신선하다. 커피농장 방문에 대해 물어봤더니 비용은 1인당 5만 원 정도인데 20명 이상이 되어야 방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혼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단다. 커피 원두 판매는 카페에서 한다고 하니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게임 드라이브 짚에서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다녔더니 코가 찡찡하다. 긴 여행 끝에 면역력이 떨어지는지 감기 기운에 어깨 아픈 것도 쉽게 낫지 않는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중국 바이러스가 심하게 퍼졌는데 귀국해서 바이러스로 오인받을까 걱정이다. 한인숙소에서는 저녁 6시 반이 식사시간이다. 거의 50일 만에 처음 먹는 한식이라 뱃속에서 받아줄지 그것도 걱정스럽다. 중국 출장 다닐 적에 보름 동안 중국음식만 먹다가 매운 한식을 먹고 설사를 한 적이 있다. 저녁은 족발과 삼겹살, 김치찌개가 나왔는데 밥과 찌개만 조금 먹었다. 


케냐로 가는 아침 창가에 킬리만자로 우후루 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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