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모래언덕을 기어오르다.

2020. 1. 9.

by 이종호

사막의 모래언덕을 기어오르다.


5시에 일어나니 피터 곤히 자고 있다. 나미브 사막의 유명한 모래언덕 듄 45를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아침을 서둘러 먹는다. 6시 출발이란다. 아침메뉴는 매일 비슷하다. 토스트 하나와 요거트에 바나나를 잘라 넣어 먹었다. 삶은 계란도 하나 먹었다.


아침 햇살이 사막을 붉게 물들인다. 사막의 모래에 철분이 있어 붉은빛을 띠고 있지만 아침 햇살이나 석양빛 아래에서는 더 뚜렷이 붉은색을 드러낸다. 캠프에서 듄 45까지는 45km 거리이고 소수스 블레이까지는 64km다. 듄 45까지 열심히 달려갔지만 이른 아침임에도 듄 45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윈도우 배경화면으로 나오는 발자국 없는 깨끗한 듄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아마 거의 불가능한 기대였던 것 같다. 해뜨기 전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발자국 없는 듄을 보는 건 어렵다. 듄 45는 높이가 180m의 모래 언덕인데 모래가 부드러워 발이 푹푹 빠진다. 그래서 오르기가 힘겹다. 듄 아래에서 신발을 벗고 맨말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침시간이어서 맨발에 닿는 모래가 서늘하다. 이곳 듄은 부드럽고 가는 모래로 알제리 사하라 사막의 모래언덕과 모습이 많이 닮았지만 색깔은 붉은색을 띠고 있어 사하라 사막의 노란색과는 다르다. 규모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언덕들이 훨씬 크고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지만 이곳 세스림의 듄 45가 세계적으로 더 잘 알려진 관광 명소가 되었다. 접근성이 좋은 까닭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난 며칠 동안 지나온 나미브 사막은 듄과 같은 모래언덕이 없이 모래와 돌이 깔려 있는 들판에 잡목들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고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산이 있었다. 아무튼 사막은 제각각의 특성이 있는 것 같다.


듄 45에서 모두 정상까지 올라갔다.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오르기는 쉽지 않다. 아침해를 받는 부분은 환하게 빛나지만 햇빛을 받지 않는 반대편은 음영이 깊다. 듄 45의 정상 너머에는 더 많은 모래언덕이 아침 햇빛을 받으며 빛나고 있다. 듄 45에서 내려와 세스람 지역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그곳에는 훨씬 더 큰 모래산 빅대디와 빅마마가 있다. 사막 가운데로 들어갈 수 없는 무파로를 근처 주차장에 세우고 4x4 짚을 타고 10여분 모래를 헤치며 더 들어갔다. 빅대디가 가까이 보인다. 짚에서 내려 모래밭을 1.2km 정도 걸어 들어가니 데스블레이가 나타난다. 원래 강이었는데 물이 말라붙어 강바닥 진흙이 시멘트 바닥처럼 하얗게 굳었다. 강이었을 때 살던 나무들이 말라죽은 채로 서있다. 데스밸리 뒤에 해발 380m의 빅대디가 있다. 빅대디가 모래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빅대디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데스블레이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으로 30분 정도 올라가다가 포기하고 하산했다. 모래가 푹푹 빠져 정상까지 두 시간 이상 걸릴 것 같은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5분이다. 내가 시간을 지체하면 일행들이 나를 기다려야 한다. 차있는 곳까지 걸어 나오니 벌써 일행 중 일부는 짚을 타고 소수스 블레이로 출발했다. 빅대디를 오르려던 나와 피터, 제이크 그리고 걸음이 늦은 제인 만 남았다. 남은 사람들만 짚을 타고 소수스블레이로 갔다.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사막 한가운데 연못이다. 물이 있는 계절에는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모이는 곳인데 물이 마른 지 오래되었다.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소수스블레이 동물들이 있을 턱이 없다. 실망이다. 소수스블레이에서 돌아 나와 무파로를 타고 캠프로 돌아왔다. 마틴이 점심으로 햄버거를 준비해 놓았다. 한 사람이 빅맥 두 개를 만들어 먹는다. 나도 두 개를 만들었더니 너무 많아 겨우 다 먹었다. 점심식사 후부터 오후 5시 반까지는 휴식시간이다. 샤워를 하고 한국 친구들과 그늘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데 조그만 뱀 한 마리가 텐트 밑으로 들어간다. 다들 텐트를 들어내며 난리를 피웠지만 뱀은 사라지고 없다.


여행 떠나기 전에 주문한 테슬라에서 설문조사 문자가 왔다. 보조금 관련 설문조사에 14일까지 응답해야 보조금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선 인터넷이 안되니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걸어서 500m가량 떨어진 편의점까지 갔다. 인터넷 이용권이 30분에 30 나비미아 달러다. 인터넷 이용권을 사서 30분 동안 씨름했지만 설문조사 사이트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인터넷 속도가 늦은 탓이다. 서울로 문자를 보내어 해결해보라고 하고 설문조사를 포기했다. 설문은 못했지만 편의점 앞에서 테이블에 앉아 콜라를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출발할 때 가지고 온 선크림이 끈적거려 안 바르고 다녔더니 팔이 까맣게 타고 물집까지 잡혔다. 편의점에는 액체로 된 선크림이 있어서 한통 샀다. 이건 끈적거리지 않는다.


5시 반에 다시 무파로를 타고 소수스캐년으로 출발했다. 숙소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소수스 캐년은 평원에 깊이 20~30m 정도에 길이가 6km인 협곡이다. 폭은 넓은 곳이 10m 정도이고 좁은 곳은 3~4m 정도다. 바닥까지 내려가니 물이 고인 곳도 있다. 오래전에 물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협곡이다. 바위로 난 길을 따라 협곡 바닥까지 내려가 물이 있는 곳까지 가봤다. 사막 한가운데지만 협곡 바닥이 깊어 물이 고여있다. 한 시간에 걸쳐 협곡을 둘러본 후 캠프로 돌아오니 저녁식사시간이다. 저녁 메뉴는 삶은 감자와 양고기 스튜. 마틴의 요리 솜씨는 훌륭하다. 사막 한가운데서 일류 레스토랑 맛을 낸다. 식사 당번이지만 마틴을 도와줄 시간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니 깜깜해졌다. 해가 지고 나면 텐트 안에서 할 일이 없다. 보름달이 캠핑장을 휘영청 밝히고 달빛에 녹아 별빛은 힘을 잃었다. 밤 9시가 되어 슬리핑백으로 파고들었다.


듄 45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모래언덕


데스블레이와 빅대디, 사람들이 데스블레이를 지나 빅대디를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