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코로에 누워 평화를 맛보다

2020. 1. 20.

by 이종호

오카방고 델타, 모로코에 누워 평화를 맛보다.


일찍 자서 한밤중에 눈이 떠졌지만 자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누워서 뒤척이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5시 20분이다. 5시 반에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늦었다. 밤새 비가 많이 왔는지 텐트 뒷 창문으로 비가 들어와 텐트 바닥이 물로 흥건하다. 밖으로 나오니 다들 서둘러 호수 쪽으로 간다. 따라가 보니 깜깜한 가운데 수로에 하마가 이동하고 있다. 하마는 낮에는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물속에서 지내다가 밤에만 이동한다. 하룻밤에 최대 20km까지 이동한다고 하니 덩치에 비해 활동적이다. 초원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캠프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조노는 가능하면 많은 동물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기린 외에 다른 동물은 보이지 않는다.


오카방코 델타의 아침은 새소리로 시작된다. 새소리로 아침을 시작하는 곳은 오카방코만 그런 건 아니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새가 있는 곳이라면 해 뜰 녘에 새소리가 가장 많이 난다. 오카방코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점은 매우 다양한 새소리가 들린다는 점이다. 오카방코는 조류들의 천국이다. 호수에 사는 민믈고기와 갈대숲의 다양한 곤충으로 인해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새들 만이 아니다. 오카방코는 특별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아도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호수에는 하마와 악어를 비롯한 다양한 물고기가 있고 초원에는 기린, 영양, 임팔라, 얼룩말, 버펄로, 누우, 코끼리, 사자, 표범 등 거의 모든 동물들이 살고 있다. 해 질 녘 오카방코의 초원에서는 초식동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건기에는 더 많은 동물들이 이곳에 살지만 우기인 지금은 많은 동물들이 더 좋은 풀을 찾아 내륙지방 깊숙이 들어가 버려 건기에 비하면 동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적다. 특히 코끼리는 대부분 내륙 초베지역으로 가버렸다.


해가 뜨면 호수는 고요하고 가끔 하마의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낮이 되면 하마는 물속으로 들어가 코만 물밖로 내밀고 있다. 악어도 물속으로 들어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시간에 동물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먹이활동도 대부분 이때 이루어진다. 운이 좋다면 사자나 표범이 임팔라나 얼룩말을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맹수들의 사냥 모습은 건기에 쉽게 볼 수 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초원에 물이 고인 곳이 정해져 있어 그곳으로 모든 동물이 모인다. 맹수들도 물 먹으러 모인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그곳으로 온다. 그래서 아프리카 방문은 건기인 7~10월이 적기이다. 오카방코 델타는 물이 많은 호수지역이기 때문에 건기에 많은 동물들이 몰려든다. 우기인 12~3월은 내륙에도 물이 흔하고 좋은 풀이 많이 자라기 때문에 초원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사방이 지평선인 오카방코 델타의 아침해는 초원에서 떠 오른다. 구름과 초원 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지평선의 한쪽에 목이 긴 기린이 서 있는 모습은 여기가 아프리카라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준다.


아침산책을 마치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8시에 모코로에 올랐다. 마운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모코로에 누워 있으니 평화롭다. 조용한 가운데 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들린다. 주위가 온통 조용하니 내 마음도 조용히 가라앉는다. 여행을 하면 생각이 넓어져서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관대해지리라 생각했는데 오카방코의 모로코에서 평화를 느끼기 전까지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빅 4를 봐야겠다고 노심초사하고 힘들다고 투덜거리고 텐트가 불편한 걸 못 참고 두고 온 것들에 대해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마음이 평화로워 지자 갑자기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갈대가 무성한 수로에 하얀 연꽃이 여기저기 피어있는데 모코로에 누워 흔들리며 마시는 커피맛은 도시의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가벼운 물살에 흔들리는 모코로에 몸을 맡기고 누워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조금 전의 조급함과 집착이 사라지고 세상에서 제일 한가로운 사람이 되었다. 한가함을 즐기다 언 듯 머리를 돌려 노를 젓는 마이크를 바라보니 그의 얼굴에는 땀이 흐른다. 마이크의 고된 노동으로 나는 한가함과 평화로움을 느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서로 상반된 입장이 오카방고 델타의 수로에도 존재하고 있다.


호숫가에 닿으니 올 때 태우고 온 짚이 대기하고 있다. 터덜거리는 소로를 돌아 나오는 길에 옆에 앉은 피터와 가진 자 들의 셈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연봉은 자기 나이의 영국 젊은이의 두배라고 한다. 영국 소속이 아닌 EU 소속으로 옮기면서 연봉협상이 잘 된 탓이라고 한다. 영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교사들의 퇴직연금이 많아 교사 출신으로 퇴임한 피터의 아버지도 고액연금을 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36세인데 아직 미혼이다. 그 나이의 무코로 노잡이 마이크는 아이 넷을 두었고 수입은 관광객의 한 사람에 1불 정도 주는 팁에 의존한다. 우리나라도 30대 중반의 나 홀로 젊은이가 많다. 못살지만 젊은 아프리카와 늙은 영국과 한국, 몇십 년 후의 세계는 어떻게 바뀔까.


돌아오는 길 마운의 슈퍼에 들러 어제 오후부터 그립던 코카콜라와 맥주를 샀다. 오후는 쉬는 시간이다. 캠프의 바 근처가 와이파이 존이다. 얼른 샤워를 하고 어제 입었던 옷을 빨아 널고 와이파이존에 앉아 SNS를 확인하고 답장도 보낸다. 이번 캠프는 다른 곳보다 와이파이 쓰기가 편리하다. 어디나 데이터 전송속도가 느린 건 어쩔 수 없지만 여긴 바 근처에서는 언제나 와이파이가 자동으로 접속되어 밀린 SNS를 다 받아 놓는다. 바에서 코카콜라를 한잔 마시면서 와이파이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저녁식사는 티본스테이크다. 벌써 여행을 나선 지 20일이 넘었지만 빵, 고기, 야채를 골고루 잘 먹는다. 매번 식사시간이 즐겁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읽던 책을 어두운 텐트 속에서 헤드랜턴으로 읽었다. 여행 때마다 책은 무거워서 한권만 가지고 다니는데 몇 페이지 안 남았다. 다 읽으면 무료한 시간을 달랠 건 스마트 폰 밖에 없다. 랜턴을 끄고 하루를 마감한다.


오카방코의 아침은 고요하다.



노를 젓는 마이크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의 땀방울로 나는 오카방코에서 평화를 느꼈다.


호수에는 연꽃이 만개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