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9.
오카방고 델타, 히뽀가 있다.
일찍 잤더니 새벽에 깨서 더 이상 잠이 안 온다. 텐트 안에서 뒤척이다가 5시 반에 밖으로 나왔다. 주위가 밝아오는데 새소리가 시끄럽다. 벤치에 나와 앉아 있는니 주위에 여러 가지 종류의 새가 날아다닌다. 가만히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해본다. 나이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데 요즘은 신중해지며 모든 걸 한 번 더 생각하며 바라본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하고싶은 것이면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앞선다. 내 신체나 정신은 충분히 젊다는 생각인데 세월이 갈수록 생각도 바뀌고 신체도 변한다.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체의 변화보다는 생각의 변화가 더 자유롭다. 신체는 나이가 들수록 노화해 가지만 정신은 더 성숙해진다. 아프리카의 자연속에서 여행을 하니 정신은 더 맑아 지는 것 같다. 유럽을 여행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화와 예술을 보는 것이라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은 자연이 만든 경이로운 세상을 보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넓게 펼쳐진 대자연속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은 미미하게 존재할 뿐이다. 미미한 인간이지만 이곳에서도 인간은 모든 자연을 자신에게 편리하게 왜곡시키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침 8시 오카방고 델타로 출발했다. 오카방고 델타는 앙골라에서 흐르던 강이 보츠와나에 이르러 수심이 얕아지면서 만들어진 여러 개의 삼각주를 칭한다. 호수의 넓이는 26000평방 km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강은 이곳을 지나서 칼라하리 사막에 다다르면 사라져 버린다. 많은 양의 강물이 증발해 버리거나 모래 속으로 스며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파로를 캠프에 쉬게 하고. 4x4 짚으로 간다. 짚이 마운을 거쳐 도로를 북쪽으로 한동안 달리다가 좌측의 넓은 초원으로 들어섰다. 왜 먼길을 무파로 대신 짚으로 이동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초원으로 난 오솔길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풀이 무릎까지 자란 길이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이 구분되어서인지 나무보다는 풀이 많다. 풀은 건기에 씨앗과 뿌리로 버티지만 나무는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수분을 취할 수 있는 나무만 이곳에서 자랄 수 있어서 초원에는 나무가 드문드문 있다.
한 시간 동안이나 초원길을 이리저리 달려 우리가 탄 짚은 무코로 타는 곳에 닿았다. 무코로는 카누다. 원래 원주민들이 통나무 가운데를 파내어 호수 내에서 아동 수단으로 쓰던 것이었는데 요즘은 파이버글라스로 만들었다. 수심이 깊지 않아 두 사람이 타고 노잡이는 뒤에 서서 긴 나무로 얕은 바닥을 밀어서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무코로를 타는 곳에는 여러 명의 현지인들이 무코로를 타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고 음식물을 파는 잡상인도 있다. 우리와 함께할 노잡이를 소개받고 호숫가에 늘어선 무쿠로 중 하나를 타고 넓은 호수로 나가니 여기저기서 하마가 보인다. 버펄로도 간혹 물가에 있다. 피터와 내가 탄 무코로의 노잡이는 마이크다. 수심이 얕은 호수 우측의 수로를 따라 무코로를 저어 나가니 수로 곳곳에 연꽃이 만개해 있다. 한 시간 정도 무코로를 타고 하마를 보러 다니다가 캠프장이 있는 호숫가에 내렸다. 캠프장은 호숫가 숲 속에 있다. 12개의 텐트를 상시로 설치해두고 가운데 공간에는 식사와 휴식을 할 수 있게 테이블을 비치해 놨다. 동물이 수시로 출몰하는 호수 가운데 섬이니 안전에 유의하라고 한다. 텐트 지역을 벗어나면 절대 안 되고 밤에는 텐트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한다. 텐트 내에 음식물도 두면 동물이 들어올 수 있으니 안된다고 한다. 화장실도 각 텐트마다 간이로 설치해 놓았다.
점심을 먹고 모코로를 타고 건너편 물이 비교적 맑고 얕은 곳으로 가서 수영을 하고 노 젓는 법도 배웠다. 물이 따뜻하고 맑아 수영하기에 좋다. 무코로는 생각보다 노젓기가 쉽지 않다. 가려고 하는 반대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코로위에서 노를 저으면서 균형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오후 4시까지는 자유 시간이고 4시부터는 걸어서 동물을 보러 다닐 예정이다. 워킹 사파리다. 야외에서 만나는 동물들을 자극할 수 있는 원색의 옷을 입으면 안 되고 큰 소리를 내서도 안된다. 사자, 코끼리, 하마, 표범 같은 대형동물을 맞닥드릴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곳은 마실 물이 없어서 가지고 와야 하고 전기도 없고 와이파이는 물론 안된다. 이곳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호수 물을 그냥 마시는데 관광객들은 면역력이 없어 마시는 즉시 설사를 한다고 한다. 4시가 되어 걸어서 사파리 투어를 시작하였다. 가이드 조노를 따라 초원으로 나섰다. 곳곳에 동물들의 배설물이 눈에 띈다. 조노가 코끼리 배설물에 대해 설명해준다. 코끼리는 먹은 것을 완벽하게 소화를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배설물에는 소화되지 않은 식물의 씨와 줄기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코끼리 배설물은 건기에 초식동물의 주요 먹이가 된다. 또한 마른 배설물을 끓여 걸러서 자궁이 약한 여성이 마시면 자궁이 튼튼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걸어서 다니는 초원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다. 맹수는 쉽게 만날 수 없고 뱀이라도 발밑에 있을까 봐 조심해서 다녔지만 뱀도 보이지 않는다. 초식 동물들은 우리가 접근하면 달아난다. 우리도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구경하는데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기린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임팔라, 스프링복, 얼룩말, 누우가 떼를 이루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면 경계태세를 취하기도 하고 몰려서 달아나기도 한다. 버펄로도 보이지만 위험하니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고 한다. 초원에는 타마이즈가 만든 탑들도 눈에 띈다. 타마이즈 타워는 이곳뿐 아니라 초원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개미의 일종인 타마이즈가 만든 거대 건축물이다. 3시간 초원을 걸어 다녔지만 코끼리 같은 대형동물은 볼 수 없었다. 동물들과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야 지루하지 않은 사파리 투어다. 임팔라를 쫒는 사자를 기대했는데 역시 기대로 끝났다. 3시간 동안 초원을 걸었더니 피곤하고 허기가 진다. 잘 먹는데도 불구하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픈 건 여행 다니기 전과 다른 점이다. 마틴이 밥과 닭고기 찜을 저녁으로 준비했다. 밤에는 위험하다고 하니 저녁을 먹자마자 텐트로 들어가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텐트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