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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폭포에서 맞은 설날

2020. 1. 25.

by 이종호

빅토리아 폭포에서 맞은 설날


오늘이 설날인데 아침에 기슬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서 설날인걸 알았다. 케이프타운에서 함께 출발한 팀들과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캐롤은 래프팅을 7시 반에 시작해서 아침을 먹자마자 모두에게 이별인사를 하고 혼자 래프팅 하는 곳으로 갔다. 나머지 5명은 엠 모요와 함께 빅토리아 폭포를 구경하러 나섰다. 숙소에서 폭포는 차로 5분 거리다. 입구에서 엠 모요가 우비를 빌릴 거냐고 해서 웬 우비 하고 그냥 폭포 전망로를 따라갔다.


빅토리아 폭포는 폭이 1.7km, 높이는 108m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20배 규모라고 한다. 비가 많이 오는 홍수기에는 분당 5억 리터의 물이 쏟아진다. 앙골라에서 시작하여 보츠와나에서 초베강이 되었다가 이곳 짐바브웨에서는 잠베지 강이 되어 거대한 폭포를 만든다. 짐바브웨 쪽에서 바라보면 폭포의 전체를 다 조망할 수 있다.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 건너편 절벽 위에 만들어 놓은 전망로를 따라가면서 곳곳에 마련해 놓은 전망대에서 폭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처음 전망대에서는 물방울이 조금 날아오는 정도였는데 폭포의 본류가 떨어지는 곳에서는 마치 소나기가 오는 것처럼 물보라가 쏟아진다. 웬 우비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전망대에서 서 있으려면 우비 없이는 소나기를 맞는 것과 같다. 카메라와 핸드폰이 젖을세라 가방 안에 넣고 거의 뛰다시피 해서 물보라를 피했다. 본류를 지나면 물보라는 안개비 정도로 바뀐다. 마침 오전 햇빛으로 폭포에는 무지개가 드리워졌다. 건너편 잠비아 쪽에는 절벽 꼭대기에 수영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지옥의 수영장이라는 옵션상품으로 팔고 있는데 그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건너다 보인다. 곳곳 전망대에는 바위들이 젖어있고 보호용 시설도 없어 위험해 보인다. 아차 하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일부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으려고 절벽 가까이에 바짝 다가서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데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두 시간에 걸쳐 전망로를 따라 폭포 전체를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잇는 빅토리아 브리지가 있는 곳까지 갔다. 이 다리 가운데가 국경이다. 이 다리 중간지점에서는 번지점프를 할 수 있다. 물론 옵션 액티비티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빅토리아 브리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정문으로 돌아 나와 일행들과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다들 헤어질 시간이다. 21일간 함께 먹고 자면서 정이 들었다. 가벼운 포옹과 악수로 아쉬움을 달래며 헤어진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으니 언제나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우리 삶의 일상이 아니던가. 이들과 헤어진 후 난 간단히 카메라만 챙겨 들고 텐다이 가게로 갔다. 텐다이는 어제 만나 오늘 그의 시골집을 가기로 해서 11시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현지인들과 함께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가는 것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아주 못 믿을 친구들은 아닌 것 같아 함께 가보기로 했다. 텐다이의 차에 텐다이와 조지 그리고 내가 타고 운전은 살림이 한다. 출발에 앞서 가솔린을 넣기 위해 주유소로 가니 주유를 하기 위해 차들이 줄을 서 있다. 짐바브웨의 연료 수급상황이 불안정해 때에 따라서는 주유소에 연료가 없어 이웃 잠비아나 보츠와나로 주유하러 가기도 한다고 한다. 30분을 기다려 30불어치 가솔린을 넣으니 바닥이던 연료 계기가 반 조금 더 올라간다. 주유를 한 후 슈퍼마켓으로 가서 장보기를 했다. 미르밀이라는 밀가루 같은 것 한 자루, 설탕 두 봉지, 식용유 한병, 물 한 박스, 등 그리고 점심용 도시락으로 밥 위에 소고기 찜 얹은 것 4개를 사니 전부 40불인데 내가 지불했다. 텐다이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현지 맥주 한 박스를 더 사서 차에 실었다.


텐다이의 고행인 바카마는 빅토리아 공항 쪽으로 10여분 가다가 좌회전하여 비포장 시골길 30분 정도 들어가는 곳에 있다. 도로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숲 속 오솔길이고 그나마 집 근처에 가니 길이 없어진다. 길도 없는 잡초밭을 차로 더듬어 들어가니 나무로 막아 만든 대문이 나온다. 전형적인 원주민 주거지다. 흙벽에 초가를 올린 집 4채가 있다. 가운데 한 채는 부엌이고 나머지 3채는 거실 겸 침실이다. 집 한쪽에 나무 그늘 아래 텐다이의 할아버지와 친척들이 모여 있다. 내가 할아버지께 술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사 가지고 간 맥주를 수박껍질을 말려 만든 통에 따라 드렸다. 내가 왔다고 집안에서 보관하던 탈과 동물의 털로 만든 옷을 가지고 나와 텐다이 할아버지가 입고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이어 친척들도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제사나 축제 때 부르는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춘다. 곡식을 빻는 모습도 보여준다. 부엌에서는 사 가지고 간 미르밀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나를 대접하기 위해서다. 다된 음식을 가지고 나왔는데 보리가루 반죽을 익힌 듯한 것과 나물을 기름에 볶은 것이다. 손을 씻고 맨손으로 먹으라고 한다. 몇 덩이 떼어먹어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나물 볶은 것도 무슨 나물인지 모르지만 씁쓰레한 맛이다. 텐다이 덕분에 원주민들의 사는 방법을 제대로 봤다. 오후 3시 가까이되어 시골집을 출발하여 빅폴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텐다이의 빅폴에 있는 집으로 가니 그의 두 아내와 아이들이 좁은 집에 살고 있는데 누추하다. 일반인들의 사는 공간이 대부분 이럴 것이라 생각해본다. 텐다이는 나를 통해 한국에 자기가 다루는 나무 조각과 돌조각을 팔아 사업을 키우고 싶어 한다. 내가 힘 자라는데 까지 도와 볼 테니 조각품에 대한 카탈로그와 가격표를 만들어 보내라고 했다.


오후 5시에는 나이로비까지 함께 여행할 새로운 팀과 만나는 시간이다. 새로운 여행팀의 크루는 케냐인으로 구성된 4명이다. 원래는 3명이 한 팀인데 주방 견습생이 있어 4명이다. 가이드는 맥켄지, 운전은 피터손, 주방은 피터가 담당이고 주방견습생은 켄이다. 함께 여행할 사람은 미국인 2명과 나 이렇게 셋이다. 여행객보다 안내원이 더 많은 셈이다. 여행 중 주의사항과 안내를 맥켄지가 한 시간 동안이나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Do right thing.'이다. 한 시간에 걸친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슈퍼에 들러 물과 세숫비누를 샀다. 그리고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닭고기 샐러드와 맥주로 저녁을 먹고 텐트 속 잠자리에 피곤한 몸을 눕혔다. 2020년 설날이 빅토리아 폭포에서 바쁘게 지나갔다.


텐다이의 가족들이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텐다이의 시골집 전경, 밭에는 옥수수를 심어 놓았다.


나를 대접하려고 준비한 음식, 미르밀 반죽 익힌 것과 볶은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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