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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r 17. 2020

빅토리아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다

2020. 1. 26.

빅토리아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다.


오늘은 이번 여행 중 가장 한가한 날이다. 케이프타운에서 빅폴까지 와서 나이로비에서 빅폴까지 운영하는 여행팀에 새롭게 합류하여 나이로비로 가는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이제 부터는 새로운 트럭과 새로운 크루들과 함께 여행해야 한다. 미국에서 와 이번 여행에 합류한 에바와 바네사 두 사람은 빅토리아 폭포 구경을 가고 난 혼자서 캠프장 그늘에 매트를 깔고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미국인 두 사람이 합류하지 않았으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까지 혼자 갈 뻔했다. 잔지바르에서는 독일인 두 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여행도 절반이 지났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텐트에서 자고 길가에서 점심을 먹고 하는 여행이 초반에는 몸에 익지 않아 어설프고 지루하게도 느껴졌지만 절반이 지나고 나니 익숙해진 느낌이다. 캠프장 그늘 매트에 누워 있으니 평화롭고 한가하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 시골집 마루에서 누워 있는 듯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두어 시간을 누워서 자다 깨다 하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지나니 누워 있는 것도 지루해 캠프장 바로 나가 카카오톡을 접속해 봤다. 조용하다. 서울도 명절 연휴로 다들 조용히 쉬는 것 같다. 단톡 방에 쉴 새 없이 올라오더니 막상 하루가 지나니 조용해졌다. 단톡 방을 통한 명절 인사 그림이나 사진이 와이파이 공해가 된 지 오래다. 명절 인사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남들이 올리는 의미 없는 그림을 단톡 방에 퍼 나르는 것은 인사라기보다는 남들의 귀중한 시간을 뺐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서울에서 쳐다보지도 않던 코카 콜라니 환타와 같은 음료수를 마시고 음식도 주는 대로 먹는다. 닭고기와 쇠고기가 번갈아 나와 거의 매일 육식을 하고 있다. 맥주도 하루에 한두 병을 마신다. 서울에서는 점심 때나 저녁때가 되어도 시장한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아 음식 먹는 양이 적었는데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식사 때만 되면 시장끼를 느끼고 음식도 많이 먹게 되어 일부러 적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울을 떠난 이후 한 끼도 한식이나 김치를 먹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식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경용이가 가져온 신라면 수프를 파스타 삶은 물에 타서 얼큰하게 만들어 먹은 것이 전부다. 이곳에서도 매운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인지 매운 샐러드 소스가 많아 야채에 뿌려먹으면 개운한 맛이 있어서 괜찮다. 


점심때가 되어서 캠프장 입구의 남툭이라는 식당에 갔다. 베트남 식당이라고 해서 갔더니 메뉴가 중국과 태국요리다. 여행안내서에 빅폴의 맛집으로 소개되어 있는 곳이다. 중국식 국수를 시켰다. 아침부터 모기가 문 발목이 가렵기 시작하여 점점 더 가려워진다. 웨이터에게 얼음을 달라고 해서 발목 부위 모기에 물려 가려운 곳을 얼음찜질을 했더니 가려움이 가라앉는다. 국수 맛은 그저 그렇다. 우리나라 칼국수 같은 것인데 국물이 적고 면발도 푸석거린다. 식당 발코니 아래 나무 그늘에서 타악기를 연주하는 현지인 밴드의 연주를 즐기며 천천히 국수를 먹었다. 식당 내부에도 손님이 없고 현지인 밴드도 나를 제외하면 무관중 연주를 하고 있다. 한가로운 한낮 시간이다. 식사를 마친 후 식당 건물 1층에 있는 빅토리아 브리지 박물관에 들러 브리지를 건설하게 된 배경에 알아보았다. 짐바브웨와 잠비아 국경에 있는 빅토리아 브리지는 영국 사람에 의해 1903년에 착공되어 1905년에 완공되었으며 공사비는 당시 금액으로 72,000파운드가 들어갔다. 다리는 강재로 만든 아치형 철교로 영국에서 완전히 조립해본 후 분해해서 현장으로 운송하여 재조립되었다고 한다. 다리는 도로와 철길이 함께 있는 구조다. 식민통치 시절 영국이 아프리카 내륙의 물자를 실어내기 위해 철도를 부설하면서 빅토리아 폭포 하류의 계곡을 건너기 위해 건설하였다.


한낮 뜨거운 햇빛을 피해 캠프 야외 수영장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3시 반 햇빛이 조금 약해지는 듯해서 산책 겸 걸어서 잠비아 국경에 있는 빅토리아 브리지로 갔다. 캠프에서는 3.5km 정도 거리다. 다리를 건너려면 다리 입구에 있는 짐바브웨 국경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 다리까지만 간다고 하면 티켓을 발부해준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다리까지는 1km 정도 거리다. 다리는 가운데에 철길이 있고 양쪽으로 자동차 도로가 있다. 걸어서 건너편 잠비아까지 갔다. 짐바브웨 쪽에는 초소에 군인이 지키고 있는데 반해 잠비아 쪽에는 초소는 있지만 아무도 없다. 현지인들은 출입국 절차 없이 다리를 건너 다니는 것 같다. 협곡을 통해 폭포의 일부만 보이지만 다리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장관이다. 다리 난간에 기대서서 폭포를 감상하는데 소나기가 쏟아진다. 다리 가운데 있는 번지점프장 천막 아래로 가서 비를 피했다. 협곡을 통해 올라오는 바람으로 인해 다리 위에는 비바람이 세차다.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오던 길로 국경 사무소를 지나 리빙스턴 시내에 있는 빅토리아 기차역으로 와서 때마침 들어온 증기기관차의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에서는 5~60년 전에나 볼 수 있던 증기기관가 이곳에서는 운행 중이다. 기관차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기관사가 차에 올라오라고 한다. 기관차로 올라갔더니 차를 출발시킨다. 기관차 안에는 석탄을 넣어 시뻘건 불이 타는 보일러가 있어 뜨겁다. 난생처음으로 증기 기관차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었고 덕분에 몇 백 미터밖에 안되지만 증기 기관차를 타봤다. 기관실 내에서 시뻘건 불이 타는 화입구에 기관사가 바로 뒷칸에 저장해 논 석탄을 쏟아붓는다. 석탄을 태워 나온 열로 수증기를 만들어 기차가 움직인다. 이론적으로는 쉽게 이해되는 증기기관차지만 직접 보고 있으니 신기하다. 


기관차에서 내리고 나니 거의 오후 6시가 다되었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하며 길을 따라 걷다가 보니 내가 묵는 캠프장에서 시내에 운영하는 고급스러운 카페 겸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 곳으로 들어가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시켜 마시는데 모처럼 마시는 커피맛이 괜찮다. 외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카페라 커피도 신선하고 맛도 훌륭하다. 에스프레소에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내친김에 샐러드도 주문해서 저녁식사를 대신했다. 캠프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빅폴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빅토리아 브리지, 철길과 자동차 도로가 있다.


빅토리아 폴 역에 들어온 증기기관차


증기 기관차가 있는 빅토리아 역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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