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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맘카페의 끝나지 않는 논쟁: 워킹맘 vs. 전업맘

by 마루마루

맘카페에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올라오는 주제의 글이 있다. 바로 '이대로 일을 해도 될까요'이다.


대개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가 육아와 직장 일에 치이고 치이다 지쳐 나가떨어질 즈음, 왠지 우리 아이가 전업맘 아이보다 뒤떨어지고 모자란 것 같고, 그게 내 탓인 것 같고, 반찬가게와 청소이모님께 의지해서 꾸려가는 집안 살림이 마음에 안 들고, 쉴 새 없이 일하고 쉴 새 없이 아이를 보는데도 무엇 하나 남는 것 같지 않을 때,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쓰는 글이다.


그러면 댓글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맞아요. 너무 힘들죠? 그래서 저는 그만뒀어요. 그리고 지금 너무 행복하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답니다'이다. 두 번째는 '맞아요. 너무 힘들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다니고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이다. '그런데 그때 그만둬서 이제는 좀 후회돼요'와 '그런데 그때 그만두지 않아서 지금 후회돼요'는 (거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옳은'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한 선택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에 맞는 증거들을 줄줄이 갖다 붙이는 능력이 있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Righteous mind)>에서는 도덕적 추론을 하는 이유가 '어떤 판단에 이른 실제적 이유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최선의 이유를 찾기 위함'이라고 꼬집고 있다. 내가 '워킹맘'을 선택했으면 '워킹맘'이 옳은 이유를 계속 찾을 것이고, '전업맘'을 선택했으면 '전업맘'이 옳은 이유를 계속 찾는 것이다. '워킹맘'을 선택하면서도 '전업맘'이 되기를 계속 갈망하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다. (반대도 그러하다) 특히 '엄마'라는 역할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역할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나의 엄마 됨'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괴리가 있는 것은 참기가 괴롭다.


첫 번째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을 때, 나는 이 부조화로 인해 끝없는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나는 집에서 아이를 보고 싶고, 아이를 보는 게 나의 체질이며 즐거움인데,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는 거지'하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괴로운 이유는 주변의 '전업맘'과 나를 끝없이 비교하고, 주변의 '전업맘의 아이'와 우리 아이를 끝없이 비교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게 먼저 보이고, 죄 없는 아이를 탓할 수는 없으니 나를 계속 괴롭힌 것이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아이의 기질, 나 외의 육아 환경,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 (코로나 및 포스트코로나 시대) 등이 한데 버무려져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워킹맘들의 한탄 섞인 글을 보며 함께 울고, '10년 넘게 일했지만 전업맘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댓글을 보며 '나도 정말 그만둬야 할까 봐'하며 괴로워했다.




두 번째 육아휴직은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첫 번째 이유는 1년 3개월이라는 여유로운 기간이다. (12개월은 확실히 짧다) 출산 후 회복하는 데 최소 3개월, 아이들과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6개월, 나의 시간을 찾고 복직을 준비하는 6개월은 각각 의미가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 '두 번째' 경험이라는 것이다. 첫째 때는 모든 것이 새롭다. 혼자서는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작은 생명이 온전한 나의 책임 아래에 있다는 것이 무겁다. 잘 돼도 내 탓, 못 돼도 내 탓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를 기르면서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잘해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있고, 나는 신경 쓰지도 않은 일이 좋은 결과로 귀결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내게만 달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두 번째 육아휴직은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후회하는 대신, 조금 더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곧 복직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두고 다시 일하는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라고 묻는다. 걱정이 왜 안 되겠느냐. 당장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해결할 지부터 걱정이 된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 하나의 힘으로 크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자라게 하는 더 많은 어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힘닿는 데까지 할 수 있고, '너희들 때문에 소중한 직장을 그만뒀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나에게는 이게 옳다. 언젠가 이 선택이 뒤집힌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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