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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어휴, 차라리 일하는 게 낫지.

by 마루마루

첫째가 48개월, 둘째가 10개월인 아침의 풍경.


7시 30분 기상 알람이 울리면 첫째를 깨운다. 첫째가 8시 45분에 유치원 버스를 타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진작에 일어나 있다. 누나가 없는 거실과 놀이방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중이다.


7시 40분 첫째와 둘째를 각자 의자에 앉힌다. 첫째의 식사를 차려주고 둘째는 먹여준다. 둘째는 아직 도구를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빨리 먹은 사람부터 8시 15분까지 놀 수 있다.


7시 40분 남편이 출근한다. 도어 투 도어 10분 거리에 직장에 다니는데 1시간 전에 출근한다. 집안 꼴은 아수라장이지만 별로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샤워하고 밤새 주문한 자기 물건들을 정리해 놓고 세탁물을 아무 데나 던져놓고 여기저기 불도 다 켜놓고 '여보 갈게' 하고 나간다. 이때 가장 얄밉다.


8시 15분 아침식사를 모두 정리하고 첫째부터 화장실에 보낸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스스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라고 한다. 해 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둘째 얼굴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둘째도 어린이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가 씻고 나오면 옷을 입는 순서를 알려주고 혼자 방에 보낸다. 스스로 옷 입기에 맛들려서 (아마 옷을 입고 나면 받는 칭찬에 맛이 들렸겠지만) 스스로 입고 나오는 동안 두 아이 물통에 물을 받고 가방을 확인한다. 둘째 간식표를 보고 못 먹는 것이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챙겨서 넣어둔다.


8시 35분 등원 알람이 울린다. 알람과 동시에 우리 셋은 집을 나선다. 첫째는 8시 45분에 버스를 탄다. 유모차에 탄 둘째와 어린이집에 간다. 어린이집은 옆 단지에 있어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9시 00분 둘째와 어린이집 문에서 인사를 한다. (이제 다닌 지 한 달 되어 적응 훈련 중이다) 둘째는 오전 낮잠 시간 때문에 10시 30분에 하원을 해야 한다. 어린이집 근처 카페에 들어가 카페인을 충전하며 전날 밤부터 쌓인 메시지들을 하나씩 읽고 분류한다. 이번 주 식단을 짜고 장보기 목록을 작성하고 운이 좋으면 책도 몇 장 읽는다.


10시 30분 둘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둘째는 유모차에서 낮잠에 든다. 이 시간을 이용해 집안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청소를 한다. 글도 쓰고 요가도 하고 오롯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다.


12시 무렵 둘째가 일어난다. 둘째를 먹이면서 옆에서 나도 오늘의 첫 끼니를 먹는다. 밥 먹고 조금 놀다 보면 둘째가 두 번째 낮잠을 자겠다고 칭얼댄다. 둘째가 잠들면 곧 첫째가 올 시간이다.


오후 3시 30분 첫째가 유치원 셔틀버스에서 내린다. '엄마, 오늘은 어디 가요?' '엄마, 저기서 (간식 가게) 간식 사가지고 가요.'가 내리면서 하는 단골 멘트다. 대부분의 날은 집에서 머물지만, 가끔 동네의 아이사랑놀이터에도 가고 마트에 장도 보러 간다. 집에 오면 간식을 먹고 두 아이가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한다. 나도 함께 놀아준다.


5시 00분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아이들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요리는 어렵다. 대부분 재료를 한데 모아 찌거나 볶는 요리다. 두 번째 육아휴직을 통해 요리 스킬이 많이 늘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순차적으로 씻는다.


8시 30분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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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나도 출근하고 싶다. 출근하면 점심시간에 방해받지 않고 밥 먹을 테고, 운이 좋으면 커피도 한 잔 사 마시면서 수다도 떨 수 있을 텐데. 애들이 저지레 해놓은 것 보지 않아도 되고 '야, 하지 마' '그만해' '엄마가 화내기 전에 빨리 해'를 말하지 않아도 될 텐데.


집에 있으면 너무 좋다. 특히 첫째가 등원하고 둘째가 낮잠 자는 고요한 시간이 너무 좋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우아하게 책을 읽다 보면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 없다.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로서, 남편의 내조자로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지 않을 뿐 (물론 최근에는 '부모급여'라는 이름의 보상을 받고 있지만, 직장에서 받는 보상과는 결이 다르다) 내 일은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가끔은 어딘가 빈 느낌이다. 병원과 환자들, 동료들이 그립다. 학회에 가서 새로운 것도 배우고 싶다. 요즘 학계의 이슈는 뭔지도 궁금하다. 가끔 이런저런 프로젝트로 연락을 받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나'의 모습이 그립다.


그래. 나는 결국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돌이켜 보면 첫 번째 육아휴직 때도 주에 1번씩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그때 잘 배워서 복직해서 열심히 써먹었더랬지. 일이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어도, 정작 일을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는 나는 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아, 오늘은 정말 출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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