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일이란
첫 육아휴직 때를 돌이켜본다. 학창 시절 12년, 의대 6년, 인턴과 레지던트 5년, 전임의 2년을 거쳐 봉직의로 한참 일하던 때였다. 삶에서 1주일의 휴가 외에 쉼이 전혀 없었고, 쉰다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일 없이 살 수 있을지 두려웠다.
첫 육아휴직 동안 일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 복직 즈음이 되어서야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출근하지' 걱정이 밀려왔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아이에게 코로나를 옮길까 봐 걱정되었다. (실제로 병원 직원이 코로나 환자를 케어하다가 가족이 전염되는 사례가 많다). 불안과 두려움뿐이었지만, '복직'이라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만으로 복직했다.
첫 복직 후 내내 집에 두고 온 첫째가 눈에 밟혔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에게 미안함을 씻을 수 없었다. 특히 전업 엄마들을 볼 때면 '내가 아이를 낳아놓고 대체 지금 뭘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편 병원에서 만나는 풀타임 엄마 선생님들을 볼 때면 '그래, 다들 저렇게 낳고 길러도 잘만 크는데 너무 걱정하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두 가지 마음은 그야말로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듯'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오가며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병원이 좋고 환자들을 만나는 것이 좋고 공부가 즐겁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괴롭고 하기 싫은 업무가 반드시 따라오는데, 나와 아이의 컨디션, 하기 싫고 괴로운 업무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사직서를 썼다가 찢는 날들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특히 아이가 아프기라도 한 날에는 '나 좋자고 일하느라'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마구 찔렀고, 그 고통을 피하고자 '나 곧 그만둘 거야!'라고 선언하며 죄책감을 피해 다녔다.
두 번째 육아휴직은 그런 중에 찾아왔다. 임신 초반부터 자궁 경부가 열려 있어 조산의 위험을 달고 살았다. 임신성 당뇨, 여러 차례의 심한 감기와 원치 않는 복약, 입원이 겹치며 내가 원해서 둘째를 가진 것임에도 이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산전 육아휴직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일찍 휴직을 시작했다. 휴직을 시작할 때는 복직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이를 둘이나 두고 출근해야 한다면 죄책감이 2배, 4배, 8배가 될 것 같았다. 두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두 번째 휴직을 시작했다. 휴직하고 6개월 정도는 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첫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출산하고, 몸을 회복하고, 이사하고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 냈다. 새 집에 정착하고, 첫째가 유치원에 적응하고, 둘째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지만 마음 한편은 '나도 내 일과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육아휴직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일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 혹은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를 손에 들었다.
왜 일하는가? 일차적으로는 먹고살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 일 혹은 노동은 사람의 본질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일을 한다. 돈을 받는 것만이 일이 아니다. 아이를 기르고 집안 살림을 돌보는 것은 노동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을 뿐 먹고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기꺼이 나의 시간을 내서 돕는 것도 함께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차적으로 일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은 삶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는 만병통치약과 같으며, 일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에서도 사람들이 몰입(flow)을 느끼는 순간에 '일하고 있는 때'의 비율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일에 몰입할 때 우리의 삶과 시야가 확장되며,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다.
이런저런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니, '일을 그만두고 싶어'라는 말을 달고 살던 때에도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의 나에게는 만족감을 느껴왔던 것 같다. 나의 직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정신과 입원 병원이다. 회진, 외래, 병동 프로그램, 크고 작은 행정일과 학회 일들, 강의 준비 등,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스마트폰으로 잡담 한 번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다. 그렇게 일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그 몰입의 순간을 사랑한다. 가끔 동료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병원 주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학회에 공부를 하러 가기도 한다. 그런 활동들은 크고 작은 리프레셔(refresher)가 된다. 게다가 월급도 준다. 내가 경제적으로 자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좋다. 그것이 나를 다시 '일'로 이끄는 요인인 것 같았다.
한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소중한 시기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너무 매력적이다. 다시 일을 한다면 너무 바쁘고 피곤하겠지만, 그 역시 너무 매력적이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두고 끝없이 고민한다. 복직하고 싶다. 복직하기 싫다. 아니 복직하고 싶다. 복직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