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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의사 엄마에게 일이란

by 마루마루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언제나 그 일에 몰두하고 기쁘게 할 수만도 없는 것이 의사 엄마의 삶인 것 같다.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싶은 의사 엄마의 근무처는 대학병원, 종합병원 또는 병원급 병원, (입원실이 없는) 의원, 기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대학병원의 근무 시간은 공식적으로는 9시부터 6시지만,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출근시간 전에 콘퍼런스를 하고, 퇴근 후에 연구 회의를 한다. 그래야 외래와 수술 스케줄에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온라인 회의가 많아졌지만 과거에는 항상 모였기 때문에 회의를 하는 날에는 거의 10시 이후에 퇴근한다. 이런 회의가 각자의 연구 역량에 따라 주 1~5회 있다. 따라서 의사 엄마들이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 (대개 조부모님이나 이모님, 혹은 이 모든 것의 조합)과 주변의 배려가 없으면 이어질 수가 없다.

종합병원 또는 병원급 병원은 비교적 규칙적인 출퇴근 시간을 보장하지만 유연 근무제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휴가가 매우 적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해 주는 곳이 거의 없다.

이런 경직된 스케줄 때문에 많은 의사 엄마들이 개원가로 내몰린다. 개원을 해서 직접 의원에서 근무하면 근무일, 근무시간 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높아진다. 그러나 결국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므로 풀타임으로 (때로는 야간진료까지) 일주에 6일간 (토요일에 진료를 하지 않는 의원은 거의 없다) 근무를 하게 된다. 대부분의 보육/교육 기관이 쉬는 토요일에 항상 출근을 해야 하므로, 토요일에 집에 머무는 아이들을 봐줄 어른이 필요하다.

기타 일자리로는 제약회사, 보건소 등이 있으며 대기업, 공기업인만큼 조금 더 유연할 수는 있겠지만 내부 사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사 엄마가 어린아이를 돌보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경직된 스케줄이다. 외래나 수술 스케줄은 최소 1달 이상 전에 예약된 것이므로 갑자기 생기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는 상담이 쌓이며 약물 처방과 상담 내용에 반영되기 때문에 의사가 바뀌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차트에 상담 내용과 분위기를 모두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내용이 의사-환자 간에 비밀처럼 남게 된다. 첫째를 낳고 복직한 나는 항상 휴가와 학회 일정을 최소 1달 이상 전에 알리고, 아무리 아프더라도 진료는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첫째가 폐렴에 걸려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다음 날 오전 외래 진료와 60명이나 되는 입원 환자를 어떻게 할지가 문제였다. 어떻게 스케줄을 맞춰 봐도 내 진료를 펑크낼 수밖에 없었다. 동료 선생님들의 배려 덕에 외래 진료는 어찌어찌 이뤄졌고, 남편이 퇴근하면 저녁에 병원에 출근해서 회진을 돌고 일을 처리했다. 환자분들께서 '선생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이렇게까지 오실 필요 없어요. 내일 뵈면 되지요.' 하며 걱정하고 위로해 주셨지만 미안한 마음을 씻을 방법이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매우 부족한 휴가이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15일 휴가나 근속에 따라 쌓이는 연차는 의사에게 별 의미가 없다. (많은 병원에서 허락하는 휴가 일수는 7~10일 사이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그날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0이라는 의미에서 긱경제 노동자이므로, 수입을 유지하려면 휴가 일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한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같은 기관에는 여름과 겨울에 방학이 있다. 방학 기간은 짧게는 3일부터 길게는 2주 정도다. 여름과 겨울을 합치면 최소 6일에서 최대 4주까지 아이가 기관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문다. 이 시기에 부모 중 한 명이 휴가를 반드시 내야 한다. 운이 좋으면 두 사람 모두 휴가를 내서 다 같이 여행을 갈 수도 있겠지만 훨씬 많은 경우는 반씩 휴가를 나눠 써야 한다. 이마저도 안 되면 양가 부모님, 베이비시터 등 온갖 동네에 손 빌릴 수 있는 곳은 다 알아봐야 한다. 부모의 휴가가 필요한 건 방학만이 아니다. 기관의 행사가 있을 때나 아이가 아플 때에도 필요하다. 부모의 휴가는 부모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아껴놓아야 한다. 그런데 더 암울한 것은 방학이 훨씬 긴 초등학교 기간이다. 방학 내내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하거나, 주야장천 미디어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거나, 내 마음 같지 않은 도우미나 양가 부모님께 의지해야 하는 현실이 우울하다.


세 번째 문제는 일하는 모든 엄마에게 공통된 부분인데, 일상적인 일을 해내기 위해서 나의 휴식 시간을 대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첫 번째 복직 이후 점심시간을 온전히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점심시간은 휴가와 조퇴, 지각으로 인해 밀린 일을 해내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미리 회진을 돌고 보호자와 통화하고 일을 해야 제시간에 직장에서 퇴근할 수 있다. 그러면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린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출근한다.


그리하여 의사 엄마들은 파트타임 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매우 많다. 파트타임 근로의 장점은 아이와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엄마가 쉴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일하고, 퇴근해서는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휴가는 더 적다. 그러다 보니 전업 주부로 머물러 있는 의사 엄마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이렇게 파트타임과 전업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비교적 여유로운 경제적 여건과 취업 환경 덕분이기도 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의사 엄마의 삶은 다른 직종의 엄마들과는 결이 조금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이 있거나 해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일에 매달리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며 수면 시간을 깎아 내는 것은 직종을 불문하고 동일하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엄마가 일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에서 살아남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육아 때문에 일을 소홀히 하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다. 커리어를 추구하려면 공부도 계속해야 하고 사회적인 모임에도 참석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 나는?' 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엄마, 이러려고 나를 낳은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복직이 가까워질수록, 다시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다행인 것은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서 이전만큼 초조하거나 괴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원래 인생이란 내 뜻대로 안 되는 거야' '이만큼 함께 보낸 시간도 기적 같지'하며 나 자신과 아이들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여유가 생긴다. 일하는 엄마로서 일과 가정의 양립은 전업 엄마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가끔 마음이 흔들리겠지만, 가끔 사직서를 품기도 하겠지만, 그런 위기를 지나면 일이 감사하고 보람되며 일로 인해 아이들과 남편에게 더 친절해질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무엇을 선택하던,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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