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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예후가 좋다는 말

by 마루마루

둘째에게 갑자기 열이 났다. 코감기와 세기관지염으로 항생제를 복용하던 중 갑자기 열이 올랐는데, 어딘지 '이건 돌발진'이라는 느낌이 왔다. 첫째도 돌발진을 앓았기 때문에 돌발진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사흘 후 열이 떨어지면서 온몸에 울긋불긋하게 발진이 돋았다. 후훗, 맞췄다. 이제 열꽃 피니까 끝났다, 고 생각했는데 열이 한참 높을 때보다 밥도 더 못 먹고 더 보채는 것이다. 나를 보면 울고 안아달라고 손을 뻗는데, 안아주면 금방 잠든다. 방금 잤는데 또 자고 또 잔다. 첫째는 열이 나면 늘어져있고 밥을 못 먹는 편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열이 떨어지면서는 오히려 잘 먹고 편안해졌던 것 같은데 둘째는 영 다른 질병의 결과를 밟고 있어 당황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돌발진을 검색해 보았다. 의학지식정보에 따르면 돌발진은 <대부분의 경우 매우 예후가 좋다 (예외: 심한 열성 경련)>고 한다. 예후가 좋다는데, 왜 더 많이 보채고 더 못 먹을까. 자꾸만 내 품을 파고들고,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내려놓아도 엉엉 우는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아이를 재우고 돌발진을 겪은 다른 엄마들의 글을 찾아보았다. 열꽃이 피면서 짜증이 엄청 늘어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며 '돌발진이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러다가 나아지겠지' 하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날 둘째는 밤새 잘 못 자고 뒤척이고 밥도 잘 못 먹고 복부도 빵빵하게 부푼 데다가 다시 열이 올랐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호흡 소리도 나쁘고, 콧물도 양이 많고 누렇고, 양쪽 귀에 중이염이 왔다고 한다. 다시 항생제와 호흡기치료제를 처방받았다.




예후가 좋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건 아마도 <심각한 합병증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후가 좋다는 말은 <심각한 합병증은 없을 뿐, 감기의 후유증과 합병증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일 텐데, 콤마 뒤의 말까지 붙이면 교과서가 너무 방대해지니까 지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픈 아이와 온 가족의 삶은 여기서 지워진 <감기의 후유증과 합병증>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아픈 아이는 건강한 형제가 등원 준비를 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자신을 봐주지 못해서 힘들고, 자고 싶은데 주변에 보조를 맞추느라 잘 쉬지 못한다. 건강한 아이는 집안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하며 혼자서 노는데 아픈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는 부모와 자신의 애정 욕구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엄마는 이 아이 저 아이 보다가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놓치고, 하고 싶었던 일조차 모두 뒷전으로 미루게 된다.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 <좋은 예후>는 가족의 삶을 뒤흔든다. 왜 그런 이야기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걸까. 그게 가족의 현실인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한참 하다 보니, 내가 <좋은 예후>라는 말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돌발진은 예후가 좋다는데 우리 아이는 왜 보채지, 밥을 안 먹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가 보내는 신호는 무시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간밤에 아이가 열이 나지 않았다면,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열은 아이가 보내는 '엄마, 나 지금 진짜 아프거든. 제발 돌발진, 예후에 집착하지 말고 병원 좀 가 봐'라는 신호였나 싶기도 하다.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아이는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고 한다. 우리 집 첫째도 크게 아프고 나면 훌쩍 성장한 것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크게 아프고 나면 엄마로서의 능력치도 한 겹 상승한다. 일종의 <고통 후 성장>인 모양이다. 고통 (pain)에 저항 (resistance)가 더해지면, 이는 갑절의 괴로움 (suffering)을 낳는다고 한다. <좋은 예후>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은 저항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이 괴로움이 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나는 <좋은 예후>라는 말에 집착해서 <좋은 예후>에 둘째를 끼워 맞추느라 둘째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도 고통은 여러 모습을 하고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이번처럼 몸이 아픈 것일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일 수도 있고, 예상외의 어려움일 수도 있다. 그런 고통이 가능하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고통이 찾아왔을 때 괴로움이 되지 않게, 내가 바라는 모습에 끼워 맞추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아직도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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