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워즈: 최종 승자 The Final Winner
남매의 전쟁은 계속된다. 특히 엄마 옆 잠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은 매일 엎치락뒤치락하며 승자를 가려내기가 힘들 정도다. 동생은 '거기가 내 자리면 왜 안 되는데. 나도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라고 주장하고, 누나는 '거기는 원래 내 자리야. 네게 나눠주거나 양보할 생각은 1도 없어.'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엄마는 갈피를 못 잡는다. 어디까지 모르는 척할 것인가,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하지만 최종 승자는 따로 있었다.
잘 시간이 되면 누나는 엄마와 먼저 침대에 들어간다. 아빠는 수유를 준비한다. 누나가 엄마와 침대에서 도란도란 책을 읽고 엄마에게 꼭 안아달라고 하는 동안, 동생은 아빠 품에서 분유를 마시고 기분 좋게 선잠에 든다. 하지만 금세 깨서 엄마를 찾는다. 아빠는 재빨리 아기띠를 한다. 동생은 아기띠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엄마를 찾는다. 그쯤 동생은 방에 들어온다. 누나는 이미 깊은 잠에 들었다. 엄마는 반대편 팔로 동생을 안아서 도닥이며 재워준다. 동생은 그 품에서 잠시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잠에 빠져든다.
최종 승자는 잠이다. 누구도 잠을 이길 수 없다. 엄마도 이길 수 없다. 훨씬 많은 날, 엄마는 잠에게 가장 먼저 지는 사람이다. 누나와 동생이 침대에서 서로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레슬링을 하든 말든, 엄마는 가장 먼저 잠의 품에 안긴다. 그러면 누나와 동생도 이내 자신들만의 균형을 찾는다. 싸우다가, 킥킥 웃다가, 함께 뒹굴다가, 점점 움직임이 느려진다. 그리고 한 녀석은 이쪽에서, 한 녀석은 저쪽에서 각자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잠에 든다.
본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을 이겨낼 사람이 아무도 없듯, 배고픔, 안전욕구 (보호받고 싶은 욕구), 애정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 소속욕구 (공동체의 일원으로 소속감과 일체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나는 그동안 모든 욕구를 즉각적으로 만족시켜 주는 '완벽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히 완벽한 것은 없다. 새로운 환경을 만나면서, 아이들의 정상 발달의 과정에서, 가족에게 찾아오는 여러 일들을 통해 누구나 역경과 불균형을 겪고 새로운 균형을 찾아낸다. 과거의 '완벽함'에 집착한다면 괴로움이 커질 뿐이다. 누나는 그것을 차차히 알게 되었고,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다. 그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욕구들이 만족되는 것을 느끼며 동생과의 관계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성숙해 간다. 한편 동생은 모든 것을 나누는 환경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중이다. 그러나 누나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동생만의 엄청난 강점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공동체)'가 한 명 더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형제는 서로 때리고 치고받고 싸워도, 관계 속에 함께 존재하며 서로의 안전욕구, 애정욕구, 소속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형제에게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이러한 본능 때문일 것 같다.
남매워즈는 끝나지 않는다. 굳이 누군가가 끼어들어 이들을 어떻게 하지 않더라도, 이들은 알아서 그 안에서 서로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법을 배우고 자신들만의 균형을 찾아나간다. 싸우다가 한 명이 다치면 나머지 한 명이 반성하고, 한 명이 크게 혼나면 나머지 한 명이 다가가 위로하며, 한 명이 애쓰고 있다면 한 명이 다가가 도와준다. 때로는 누나가 도움을 받고 때로는 동생이 도움을 받으며 함께 단단해진다. 비가 오면 땅이 더 견고해지듯, 상처가 난 자리에는 더 튼튼한 살이 자라나듯, 크게 아프고 나면 훌쩍 성장하듯, 이들은 관계 속에서 싸우고 화해하고 배우고 성장할 것이다.
후일담.
누나는 자기 방이 갖고 싶다. 한 살 많은 사촌언니의 공주방을 보고 홀딱 반했다. 자기 침대를 들여 공주방을 꾸며달라고 한다. 방을 분리해 낼 좋은 기회다 싶어 얼른 침대와 가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의사소통에 착오가 있었다. 누나는 공주방에서 엄마와 단둘이 자야만 한단다. 누나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자기 방이 필요 없다고 한다. 누나가 혼자 자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