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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Oct 12.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낯가림

  낯가림은 익숙한 사람과 낯선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인지 발달의 신호이다. 낯가리는 아이들은 똑똑하다는 것은 인지 발달의 의미에서 맞다. 하지만 마루의 낯가림이 시작되었을 때, 내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복잡했다.


    6~7개월 무렵, 마루는 어느 날 갑자기 이모님께 갑자기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이모님이 안아주면 울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함께 있어도 이모님이 안아주면, 즉 나에게서 멀어지면 울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아기였기 때문에 이모님도 나도 꽤 많이 당황했다. 비슷한 무렵 아빠에게 낯가림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안아 재우려 하면 울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는 꽤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가끔 당직으로 아빠가 없는 날이 있기는 하지만 훨씬 많은 날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에게 낯을 가린다니. 그야말로 엄마와 엄마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기 시작한 '낯가림'의 시작이었다.


  이 상황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나의 복직 예정 때문이었다. 복직까지는 4-5개월 정도 남아있긴 했지만, 그때의 나는 우는 아기를 떼어놓고 출근할 용기가 전혀 없었다. 이모님께 안 가려고 하면 어떡하지, 출근할 때마다 울면 어떡하지, 내가 정말 복직할 수 있을까. 출근 당일, 병원에 전화 걸어 '아기가 울어 출근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결정한 것이 짐보리에 가는 것이었다. 세상엔 엄마가 아닌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나름 즐겁다는 것을 가르쳐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짐보리 첫 수업에서 마루는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낯선 기구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에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즈음엔 완벽하게 적응하여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그로부터 복직할 때까지 약 3개월 간 짐보리에 다녔는데, 마루는 짐보리를 정말 좋아했다. 다른 친구들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예쁘고 젊은 선생님께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기도 하고, 선생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기구 위에 먼저 올라가기도 했다. 


  짐보리 효과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루의 낯가림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처음 보거나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 있으면 처음에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어도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지금은 출근할 때 시무룩한 표정을 짓기는 해도 울지는 않는다. 이모님이 오시면 반가워하고, 내가 퇴근해도 반가워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나의 극단적인 생각과 과도한 걱정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항상 그랬듯, 마루는 낯가림이라는 문제도 스스로의 성장을 통해 잘 극복해주었다. 


  아기의 새로운 발달을 보면 엄마 마음에는 모순되는 두 가지 감정이 발생하는 것 같다. 기쁘면서도 기쁘지 않은. 새로운 발달 과업을 성취해낸 아기가 뿌듯하게 느껴지지만, 여기서부터 만나게 될 낯선 문제들이 두렵고 잘 해결하지 못할까 봐 겁이 난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 시간이 흐르고 나면 결국은 해결된다. 그러니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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