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마루 Oct 28.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생산의 고통? 성장의 고통!

  모유 수유 동안 마루는 응아를 정말 잘했다. 하루에 한 번, 거의 대부분 모유를 먹자마자 그 자리에서 끄응하면 모유 특유의 시큼 구수한 냄새와 함께 응아를 창조해냈다. 

  그런 마루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으니 바로 이유식이었다. 이유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날 마루는 괴성을 지르면서 응아를 했다. 그전의 약간 묽은 듯한 응아의 모습이 아니라, 염소똥이나 토끼똥이라고 부르는 모양의 작은 응아를 몇 덩어리 만들어내면서 낑낑대고 울었다. 분유를 먹으며 이유식까지 시작해서 아마 수분 섭취량이 급격히 줄어든 모양이었다. 며칠을 그렇게 소리 지르며 응아를 해서 걱정이 되어 소아과에 갔다. 소아과 선생님은 일단 아예 못 보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만 항문 끝에 딱딱하게 뭉쳐있을 수 있으니 약을 먹여도 좋다고 하며 변비약을 처방해주셨다. 그때부터 마루와 나 vs 변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일단 가장 쉬운 것은 유산균 교체였다. 주변의 추천으로 꽤 비싼 유산균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유산균을 바꾸고도 마루는 매번 응아 할 때마다 큰소리로 울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다음은 변비에 좋다는 식재료를 검색했다. 오트밀이 수분을 많이 머금어 변비에 좋다는 글을 많이 봐서 해외 직구로 이유식용 오트밀을 구했다. 이번에도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날그날 다르긴 했지만 훨씬 많은 날들을 울면서 응아를 만들어냈다. 그나마 푸룬이 들은 과일 퓌레를 먹은 날은 변의 모양이 좋긴 했는데, 그마저도 퓌레를 자주 먹이니 효과가 점점 줄었다. 물을 먹여보려고 스파우트 컵도 샀지만 익숙지 않아서인지 잘 마시지 못했다. 


  사실 이 즈음 이놈의 응아 문제로 너무 고민을 해서 내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물론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더 있었겠지만 (젖병에 물 담아 주기, 또 다른 유산균 찾기 등) 이상하게도 해 볼 만한 힘이 생기지 않았다. 아마 너무 마음 앓이를 해서 에너지가 떨어졌거나 무기력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내 몸이라면 열심히 운동하고 먹는 것을 조절하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는 등 변비에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스스로 할 텐데, 내 몸이 아니니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남의 일이라기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우연히 이유식용 현미 가루를 파는 곳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시도라 생각하고 현미를 섞어서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기적처럼 마루의 응아 상태가 급격히 호전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이유식에 익숙해져서 응아 상태가 좋아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편안하게 응아를 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간간히 힘든 날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처럼 매일매일 아파서 울면서 응아 하는 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응아는 아기가 세상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다. 모유나 분유를 마실 때와는 다르게 이유식을 먹는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그 적응 과정에서 숭고하기 그지없는 창조 과정이 마루에게는 꽤나 큰 고통으로 경험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엄마는 이 고통이 마루가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성장통은 반드시 존재하지. 엄마가 대신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그건 온전히 네 몫이란다. 다만 엄마는 그 아픔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정말 유익한 통증이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