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마루 Nov 06.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엄마에게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 탓인지, 성격 탓인지 나는 '경계'에 예민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너와 내가 남이냐'라는 말이다. 당연히 너와 나는 남이지 어떻게 한 몸이야?

  이 말로 나는 엄마와 정말 많이 다투었다. 나의 삶은 나의 경계를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랬기 때문에 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나의 '경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나와 아기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모님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기는 아주 어릴  '정상적 자폐기(autism) 공생기(symbiosis)' 거치게 된다. 자폐기에는 아기가 자기 자신에 몰두해있기 때문에 외부 자극에 매우 둔감하다. 단지 본인의 욕구에 따라 반응할 뿐이다. 공생기가 되면 엄마와 아기는 마치  몸처럼 살기 시작한다. 이는 아기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호르몬'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 엄마에게도 자연스럽게 찾아와  몸처럼 지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  시기 동안 나는 ''라는 독립 개체가 아니라 '마루-' 결합체를 형성해서 지냈다.


  마루는 생후 6개월이  지난 한겨울 즈음, 뒤집기 시작하며 세상을 탐색하면서 아마도 정상적 공생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같다. 이 무렵 나에게도 어떤 변화가 왔다. 평소보다 더더욱 절실하게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이모님이 오시면 물리적으로 육아에서 해방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이모님의 눈치를 안 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혼자서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 가득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정말 지쳤다, 나라는 인간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무엇을 해도 무기력한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눈물도 많이 났다. '우울한 기분'이지 않았나 싶다.


  1,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날이었다. 이모님이 오시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주어진 시간은 3시간 . 동물원 둘레길이 개방되었다는 글에 의지해 무작정 차를 끌고 동물원으로 갔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길이 어떤지도 알아보지도  유행 지난 롱 패딩과 어그부츠에 몸을 파묻고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걸었 추운지도 몰랐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엄청 빠른 걸음 기준) 두 시간  정도 되는 둘레길이었는데, 추운 겨울 평일 한낮이어서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었다.  길을 미친 사람처럼 걷고 차로 돌아와 시동을 켜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알았다. ‘경계 중요한 내가 경계 없는 6개월을 보내고 나니 지쳐 나가떨어진 것이. 경계 없는 '공생기' 너무 소중했지만, 소중하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엄마라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만, 어떠한 역할도 부여받지 않은 ''라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었고, 매우 중요했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은 나의 경계를 지키는 중요한 도구인 셈이.


  돌이 한참 지난 지금 여전히 나만의 공간과 시간은  지켜지지 않는다. 최소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을까 예상해본. 아니, 기대해본다. 그때까지 너무 지치지 않게 틈틈이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며 살아남고 싶다. 그것이 마루에게 '너의 경계는  중요하단다'라는 메시지를 몸으로 전달하는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