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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Nov 13.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필요는 발전의 어머니 (feat. 수면교육 리부팅)

  나는 수면교육에 '매우' 진심인 편이었다 (https://brunch.co.kr/@marumom/17). 하지만 육아는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숭고한 진실을 깨달았다는 핑계로 수면교육을 방치했다. 마루는 업히거나 안겨서 잠들었고 깊게 잠든 후 내려놓으면 넓은 패밀리 침대를 종횡무진하며 잠자는 친구였다.


  이렇게 살다가 말귀를 알아듣게 되면 가르쳐서 분리시켜야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내던 중, 그렇게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했다. 마루가 7-8개월쯤 된, 남편의 당직날이었다. 평소처럼 마루를 아기띠로 안아서 토닥토닥 자장가를 불러 재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잠을 자지 않는다. 아기띠 안에서 몸을 배배 꼬고 허우적대면서 울기 시작한 것. 엄마는 이런 일은 이미 익숙하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방 안을 배회하며 잘 자라 우리 아가를 부르는데, 점점 울음소리가 커진다. 아기띠가 답답한가? 이번에는 포대기를 가져와 등에 업었다. 등에서도 난리가 났다. 포대기 밖으로 기어 나오려 하는 것 같고 점점 불안정해진다. 다시 포대기를 풀어 앞으로 안았다가 다시 업어도 보고 방 밖으로 나왔다가 혹시 어디 아픈가 싶어서 여기저기 만져보아도 짚히는 곳 없이 답답하기만 한 시간이 흘렀다.

  2시간이나 지났을까. 통상 업고 안고 재우면 길어야 40분 안에 깊은 잠에 들어주었는데,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멘탈도 흔들렸다. 나도 정말 쉬고 싶은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새로운 대책이 필요해.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마루를 침대에 눕혔다. 마루야, 엄마가 오늘 더 이상은 안돼. 허리도 아프고 더는 못 안아주겠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오늘부터 침대에 누워서 자보자. 오늘은 네가 아무리 울어도 더 안아줄 수는 없어. 

  마루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 자장가 한 소절, 마루를 달래는 말 한 구절을 번갈아 읊으며 마루의 가슴을 다독여줬다. 2시간을 내리 운 마루도 제풀에 지쳤는지, 아니면 누워서 자는 게 더 편해서였는지 조금 잠잠해졌다. 낑낑 울다가 살짝 졸고 또 깨서 앵 울다가 잠잠해지고 팔다리를 허우적대기를 40분, 마루는 정말 잠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루는 침대에 누워서 잠에 들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의 수면 의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마지막 분유를 먹고 졸려하기 시작하면 잔잔한 빗소리를 켠 어두운 방에서 마루는 침대에 눕고 나는 그 옆에 앉는다. '잘 자라 우리 아가'를 부르며 가슴을 토닥여준다. 그 난리가 있고 난 다음 날은 30분, 그다음 날은 15분, 마루가 누워서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점점 줄었다. 누워서 자니 중간에 내려놓으며 깰 일이 없어 마루는 더 깊게, 더 잘 잤다. 더욱 무거워진 마루를 안거나 업지 않아 내 허리와 어깨는 좀 더 편안해졌고, 육퇴의 질이 향상되었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관성에 젖어 계속 안거나 업어서 재웠을 것이다. 비록 그날은 엄청나게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많이 났지만, 덕분에 나는 아기를 편히 재우고 평온한 육퇴를 즐기고 싶다는 내면의 동기를 다시 알아차렸다. 변화(아기가 편히 잠들어 잘 자는 것)가 너무나도 절실했기에 변했고(눕혀서 재우기 시도), 변화(눕혀서 재우기)를 유지했다. 진정 필요는 발전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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