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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Nov 18.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안 된다는 말 대신..

 나는 ‘안 돼’라는 말을 싫어한다. 하고 싶은 일이 안 된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유난히 더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하면 안 될 만하면 처음부터 안 하는 편이다. 이런 성격이 자리잡은 데는 어린 시절의 ‘안 돼’들이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나 역시 ‘안 돼’에 아픈 상처들이 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살다 보면 안된다고 말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정신병동은 단체 생활이기 때문에 개인의 편의를 위해 병동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찾아오기에 반드시 ‘안 돼’를 말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의 '안 돼'는 안전에 관한 것이다. 질식이 될 만한 음식이나 자해의 도구로 사용될만한 물건을 반입하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다투는 것 같은 것이다. 반드시 '안 돼'라고 말해야 함에도 나에게 '안 돼'는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기에 어떻게 하면 ‘안 돼’를 부드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안 되는 이유 설명하기, 생각해 볼 시간 갖기, 안되는 것 대신 다른 선택지 주기, 선택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것은 안 되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전하기 등등. 


  아기가 꼼지락거릴수록, 행동 반경이 넓어질수록 엄마 입장에서 아기에게 '안 돼'라고 할 일이 많아진다. 병동에서랑 똑같이 대부분은 안전에 관한 부분이다. 한창 구강기인 마루는 왠만한 건 다 입에 넣는다. 대부분의 장난감은 입에 넣어도 될 만한 것들이지만 먼지나 날카로운 물건들, 고양이 사료 같은 것을 입에 가져간다면 '안 돼'를 외쳐야 하는 순간이다. 보행기에 타서 기저귀 쓰레기통을 만지고 콘센트에 손가락을 넣을 때, 고양이를 쥐어뜯을 때도 '안 돼'를 외쳐야 한다.

  아직 안전과 위험에 대한 개념이 없기에 안 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인데도 나는 그 ‘안 돼’가 싫다. 그래서 다르게 말하려고 여러 방법을 궁리했던 것 같다.

  ‘마루야 그거 말고 이거 갖고 놀아’ (대안 주기)

  ‘마루야 구구가 아야하대. 쥐어뜯는 대신 예쁘다 쓰다듬어주자’ (이유 설명하기)

  ‘엄마가 그거 하고 싶은 마루 마음은 이해하거든?’ (공감 전달하기)

  마루는 일단 못 하게 하기 때문에 짜증을 내거나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아기의 장점이 무엇인가. 금방 배운다는 점이다. 금방 못 하게 한 일을 잊고 새롭게 시작한 일에 흥미를 가진다.   


  돌이켜보면 항상 이렇게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안 돼’라는 짧은 말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내가 멀리 있고 마루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 몸이 당장 거기까지 갈 수 없을 때, 일단 마루를 멈추게 해야할 때는 ‘안 돼!’라고 소리치게 된다. 또 주변 사람들의 '안 돼'까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시터 이모님, 양가 부모님, 심지어 남편까지 ‘에비에비, 안 돼’를 과용한다.장난감으로 노는 방법을 정해놓고 그렇게 안 놀면 '안 돼'라고 할 때, 속으로 '어린게 그런 놀이 규칙까지 일일이 따라야 한다고 하는건 정말 너무하네'라고 속으로 짜증을 내고 있다. 하지만 내 육아 방침이 그러하니 따라달라고 하기도 죄송하고 (시간 내서 봐주고 있는 것으로 이미 매우 고맙다) ‘안 돼’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좀 웃기기도 하다. 언제나 이론 (이상적)과 현실은 차이가 많지만, 육아는 정말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안 된다는 말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니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이만큼은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안 돼’에 갇히지 말고 ‘되는 것’을 멋지게 해내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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