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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Nov 23.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그거 아니? 엄마는 사실 대학원생이기도 하단다.

  마루가 태어난 날을 기점으로 나의 정체성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차 모성 몰입과 정상적 공생기를 거쳐 나-마루 복합체가 운영되고 있다. 나는 마루의 일부로, 마루는 나의 일부로 살고 있다. 엄마 아빠의 딸, 남편의 아내, 누군가의 주치의, 모 병원의 직원이라는 나의 정체성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처박혀버렸다.


  그렇게 잊힌 정체성 중 하나가 대학원생이다. 의과대학 졸업 후 학문에 뜻이 없던 나는 대학원과 정신분석 중 정신분석을 선택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전문의가 된 후에도 한동안 분석가 선생님을 만났다. 분석을 받으며 나의 많은 부분이 다듬어졌고, 진지하게 분석을 더 공부해볼까 고민하며 전문의가 됐다.

  전문의가 된 후 첫 진로는 대학병원 임상강사였다. 전공의 때 담당 교수님께 중독 환자를 보고 싶으니 중독 전문병원을 소개해달라고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당돌하다) 부탁드렸는데, 교수님께서 중독을 연구하는 임상강사 자리를 소개해주셨다. 취직이 어려운 시절이었고 바로 고수들의 무림으로 뛰어드는 것이 겁났기에 익숙한 대학병원에 남는 선택은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임상강사가 되어 허구한 날 논문만 쓰다 보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대학원에 진학하는 게 낫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안일한 생각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신혼 시절, 일과 공부와 취미에 열정을 쏟으며 보냈다. 초반에 학점도 많이 취득하고 논문도 많이 썼다. 그렇게 졸업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나니 임신이 되었다 (엄청난 타이밍). 임신 중에 졸업논문을 열심히 다듬었다. 그리고 출산을 했다. 그리고 대학원생이라는 정체성을 잊고 살았다.


  복직 전에 대학원을 졸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준비를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코로나 시국이라 온라인으로 1차 심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모님이 오시면 마루를 맡기고 졸업 논문을 다듬기 시작했다. 저녁에는 남편에게 맡기고 준비를 이어갔다. 몇 개월 손을 놨더니 감이 뚝 떨어져 있었지만, 며칠 열심히 하다 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1차 심사가 가까워졌다. 온라인 심사라고는 해도 마루를 업고 심사를 받을 수는 없어서 집에서 마루를 잠깐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모님이 계시기 어려운 시간인 데다 남편이나 친정 엄마도 어렵다고 해서 시어머니께 부탁드렸다. 시어머니는 흔쾌히 가능하다고 해주셨지만, 사실 내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1차 심사 당일,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옷도 갖춰 입었다. 어머님께 마루를 맡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까지 잠잠하던 마루가 낑낑대더니 기어이 울기 시작했다. 발표 시간이 임박해 나가 보지도 못하고 일단 발표를 시작했다. 마루 울음소리와 어머님이 마루를 달래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어떻게 발표를 마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수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끄자마자 방 밖으로 달려 나갔다. 평소 자주 만나지 않는 할머니가 낯설고 어머님도 승아를 자주 보지 않으니 어떻게 달래면 좋은지 몰라서 서로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마루를 안아 달래고 어머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은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바로 귀가하셨다. 마루는 그제야 울음이 그쳤다. 엄마 이제 돌아왔어. 최선을 다해 엄청 빨리 달려왔는데 느꼈니? 너도 어지간히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두 시간을 낑낑대고 울기만 하다니. 정말 고생이 많았어.


  2차 심사는 대면이었다. 미리 남편에게 휴가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1차를 해봤다고 2차는 너무 두렵지 않았다. 심사 후 저녁 식사까지 하는 일정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심사위원님들이 바쁘셔서 나는 모처럼 친정 엄마와 아주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마루 없이 하는 식사는 그때가 출산 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밥 먹고 차도 마시고 나서 귀가했다. 남편은 마루를 씻기고 재우고 햄버거를 배달시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코로나로 졸업식은 없었다. 때 맞춰 학위모와 가운을 빌려줘서 가족과 단출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나는 박사가 되었다. 학문에 뜻은 없었지만, 하늘의 뜻에 따라 박사가 된 모양이다. 


  마루야, 그거 아니? 엄마는 마루의 엄마이지만 다른 얼굴도 많이 가지고 있단다. 때로는 그 얼굴의 역할을 하느라 마루와 잠깐 떨어져 있어야 할 수도 있어. 그렇다고 엄마가 마루 엄마인 것은 변하지 않아. 마루와 떨어져 있다고 마루를 잊어버렸거나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야. 그리고 그 일을 하고 나면 엄마는 온 힘을 다해 마루에게 달려갈 거야. 마루도 점점 클수록 다양한 얼굴을 갖게 될 거야. 마루가 다른 얼굴을 보여도 마루가 엄마 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 함께, 또 각자 성장하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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