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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Nov 29.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너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코로나19와 저금리에 맞물려 자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여서일까, 유난히 증여에 관한 기사와 글을 많이 보는 한 해였다. 현행법상 미성년자에게 10년간 2천만 원을 비과세로 증여 가능하기에, 성인이 되기까지 총 4천만 원을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다는 건 이미 국민 상식이 된 모양이었다. 아이 명의의 주식 계좌 개설도 엄마라면 다 하는 일처럼 보인다. 아이 명의로 공모주 청약을 받고 주식으로 재산을 증여해서 자산을 불려서 물려주는 똑똑한 부모도 많다. 자산가 부모라면 기꺼이 증여세를 내고 미성년자 자식에게 부동산을 증여한다.


  나의 성장 배경은 이런 문화와 거리가 멀다. 나와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우리가 죽으면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부모의 말을 듣고 자랐다. 어렸을 때, 그리고 출산 전까지는 이 말의 뜻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건강한 몸과 정신(?)을 물려주시고 일해서 먹고살 만큼 가르쳐주셨으니 군말 않고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고 믿어왔고 부모님께도 ‘있는 거 다 쓰고 가셔라’고 말하며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된다’는 패기 넘치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나 역시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밥벌이는 지가 알아서 해야지.


  하지만 막상 자식이 생기고 나니 마음이 완전히 달라진다. 마루가 백일이 되었을 때 마루의 은행 통장과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명절마다 마루 이름으로 받는 용돈을 모아주고 미성년자 시절에 가능한 증여를 준비한 것이다. 마루가 성인이 되었을 때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만 원은 쉽게 모이는 돈은 아니다. 씀씀이를 줄이고 증여 명목의 저축액을 신설해야 한다. 그런 생각에 몰두해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아이 없을 때 월급 받는 족족 신나게 여행 다니며 뿌리고 다녔던 과거를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그 과거가 예전보다 훨씬 더 후회된다.


  엄마로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게 돈밖에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자꾸 증여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 내가 자란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에서 성장하게 될 마루의 삶에 혹시라도 돈 때문에 지장이 생길까봐 겁이 났다. 부모의 차와 집으로 친구가 갈리는 세상에서, 마루가 그런 기준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기준에서 부족함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순적인 나를 발견했다. 엄마는 네게 좋은 마음밭을 물려주고 싶은데, 그 좋은 마음밭이 돈에 좌지우지되는 기분이었다.


  잊지 말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계야. 엄마는 네게 타인과 자신 모두를 위한 배려, 관대함, 따뜻함을 물려주고 싶어. 그래서 마루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마루로 인해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누구보다 네가 행복하고 평온하기를 바라. 돈은 삶에서 없으면 안 되는 것은 맞지. 하지만 돈만 있고 냉담하고 이기적이고 너무 엄격하기만 하다면 엄마가 생각할 때 그건 너무 슬픈 삶일 것 같아. 엄마가 원칙을 다시 기억하고 제대로 지킬게. 돈보다 훨씬 중요한 우리의 가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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