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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Dec 04.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부모의 욕망과 아이의 현실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해주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다. 거주 환경, 만나는 사람, 쓰는 물건 등 아이가 접하는 모든 것이 최고의 것으로 완벽하게 갖춰지는 것을 마다할 부모는 없다. 문제는 최고와 완벽을 추구하는데 따라오는 어려움이다.


  대표적인 어려움은 금전적인 부분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산은 한정적이다. 만약 100만 원을 번다면, 그 안에서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지가 선택으로 남겨진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야마토 나데시코(やまとなでしこ)’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마츠시마 나나코(극중명 진노 사쿠라코神野 桜子)는 퍼스트 클래스 기내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대부호에게 시집가는 것이 꿈이다. 그리하여 퍼스트 클래스 승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데이트 신청을 받아내기 위해 본인을 매우 고급스럽게 꾸민다. 데이트에는 명품 옷을 입고 가고, 데이트가 끝나면 고급 맨션 앞에서 내린다. 사실 자신의 집은 그 맨션 뒷골목에 있는 쓰러져가는 원룸이고, 식사는 끼니마다 컵라면이다. 버는 돈은 모두 자신을 꾸미는 명품을 사는 데 올인한다. 마츠시마 나나코는 본인을 부유하게 보이는 데 모든 선택을 집중했다. 아이를 위한 소비에도 선택과 집중이 따라온다. 제한 내에서 최대한 좋은 것으로 선택하고 싶다.

 

  나는 돈 쓰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모든 종류의 소비에 비교적 인색한 편이다. 그런 나도 엄마니까 아이를 위해 쓰는 건 정말 좋은 것을 사주고 싶다. 사소하게는 가제수건, 기저귀, 아기 화장품, 분유에서 시작해 옷, 책, 장난감 같은 것도 정말 좋은 것을 사고 싶다. 

  나는 책에 좀 (많이) 집착하는 편이고 책 사는 데는 크게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기에게 좋은 책을 많이 사주고 싶다는 욕심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출산 전부터 아기의 첫 책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맘카페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가 '블루래빗과 두두스토리 중 어느 게 좋을까요?'다. 둘 다 전집으로 사면 40만 원이 넘는다. 40만 원은 꽤 큰 금액 아닌가. 말도 못 읽는 아기가 읽는 책과 교구인데. 이보다 더한 것도 있다. 핀덴베베는 70만 원, 프뢰벨 시리즈는 100만 원이 넘는다. 대체 이렇게 비싼 걸 누가 사냐고 한탄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면 세상에 자식 위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부모가 너무 많다. 나만 (이거 사 줄) 돈 없고 매정한 부모 같은 느낌이 든다.


  결정장애가 매우 심각한 나는 이것저것 재보다가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블루래빗 소전집(10권)과 돌잡이 수학을 선물 받고, 온라인에서 두두스토리 스텝2, 당근에서 핀덴베베 시리즈, 재난지원금으로 아람 베이비올 시리즈를 구입했다. 아무리 비싼 전집이어도 아기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절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당근에 나오는 고퀄 전집의 비밀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전집이 민망할 정도로 사은품으로 받은 단행본을 더 좋아한다. 나는 여전히 아기 책에 집착하고 있지만, 예전보다 많이 느긋해졌다. 때가 되면, 정말 자기 것이라면 어떻게든 얻게 된다.

  나의 욕망과 상관없이 아기는 자기의 속도로,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자란다.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장난감도, 옷도, 화장품도, 가장 비싸고 잘 알려진 것이 최고가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게 있다.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은 부모의 욕망이다. 하지만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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