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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Dec 11.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아기의 낮잠 시간. 엄마는 할 일이 많다. 젖병 닦기, 집 정리, 빨래와 청소, 저녁거리 준비, 온라인 장보기, 잠시 눈 붙이기, 미뤄둔 요가와 독서하기. 아기의 낮잠 시간은 엄마의 활동 시간이다. 조용하지만 민첩한 움직임.

  아기는 자랄수록 낮잠 시간이 줄어든다. 정상적인 발달이지만 마음이 복잡하다. 점점 시간이 부족해졌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신념으로 낮잠 시간의 활동 우선순위를 엄마의 복지에 초점을 맞췄다. 마루가 자면 일단 매트를 깔고 30분 정도 요가를 한다. 운이 좋으면 1시간도 가능하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나오려는데 마루가 깰 것 같으면 누운 채로 전자책을 읽는다. 그렇게 하루에 1-2시간씩 엄마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내게는 꼭 해야 할 집안일도 있다. 그것들은 마루가 깨면 같이 한다. 보행기에 앉혀두고 청소기 돌리기, 바닥에 장난감 깔아 두고 저녁 식사 준비하기, 빨랫감 쌓아두고 놀게 하면서 빨래 개기, 떡튀밥 깔아 두고 이유식 만들기, 너무 피곤하면 기어 다니는 마루 옆에서 꾸벅꾸벅 졸기. 엄마의 집안일을 지루해하지 않게 하기 위한 엄마의 기술은 발전한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문제점 발견. 마루가 깨어있는 동안 제대로 놀지 못하는 것이다. '미안해 마루야 엄마 이것만 하고'가 입에 붙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것'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것'을 하는 동안 '저것'도 생각이 난다. 빨래만 개면 놀아줄게, 하고 세탁물을 수납장에 넣다가 지저분한 바닥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청소기를 들고 온다. 그러면 보행기를 끌고 마루가 찡찡대면서 다가온다. 간식을 꺼내놓고 이유식을 만들다 보면 1시간은 훌쩍 간다. 5분 만에 꺼내 놓은 간식을 홀라당한 마루는 발치에서 낑낑댄다. '엄마, 이유식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너를 위해 하겠다고 하는 일인데, 이상하게 널 위한 일 같지가 않네?


  그래, 지금 중요한 게 뭐지? 아이는 금방 자란다. 아기에게 엄마가 필요한 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잠깐 열과 성을 다해 놀아주면 금방 아기가 깊게 잠드는 밤이 온다. 그런 날들이 지나면 나는 복직할 테고, 조금 더 지나면 어린이집에 다니고, 유치원, 학교에 가면 금방 엄마 손을 떠난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내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낮잠시간 내내 집안일에 매여있기는 싫다. 그러면 낮잠을 더 길게 자지 않는 마루를 원망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고, 마루와 있는 시간도 온전히 누리고 싶다. 내가 너무 욕심쟁이인가?


  그리하여 나는 소비를 조금 더 아끼고 반찬을 주문하고 이유식도 시판으로 하기로 했다. 남편의 양해를 구해 청소 이모님도 부르기로 했다.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익숙지 않고 걱정도 됐지만, 막상 해보니 나의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이만한 것도 없었다.

  너를 위한다고 하는 일이 사실 너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 나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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