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럼, 엄마가 안아줘야지
아기는 운다. 우는 것으로 소통하는 나이.
(아마도) 아기는 안아달라고 운다.
아기는 왜 안아달라고 울까?
(아마도) 엄마 품이 좋기 때문이다.
폭 안겨본 적이 있다면, 푹신한 침대에 폭 싸이듯 누워본 적이 있다면 안기는 경험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 것이다. '여기서는 괜찮아. 여기서는 울어도 괜찮고, 아무 생각 없이 너를 맡겨도 괜찮아. 여기서는 안전해.' 안아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더 큰 그릇으로 감싸는 것 (containing)이고 그 무게를 견뎌준다는 의미(holding)이다. holding environment, containment는 정신분석에서 적절한 성장 환경을 묘사하기 위해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안아주는 것은 안아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기는 자기 감정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 아직 그 감정을 다 담을 만큼 마음 그릇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쾌한 경험을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고, 불쾌한 경험에서 오는 감정을 스스로 달랠 수도 없다. 그럴 때 엄마의 품이 꼭 필요하다. 불쾌한 감정을 달래주는 아주 빠른 치료제. 너는 안전하다는 강력한 메시지.
때로는 딱히 불쾌하지 않더라도 더 마음 편해지기 위해서, 따뜻한 느낌이 그리울 수도 있다. 그럴 때도 엄마의 품이 필요하다.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효과적인 치료제. 너는 혼자가 아니고 널 위한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
하지만 때로는 '너 이거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싶을 정도로 안아 달라고 할 때가 있다. 아기가 큰 발달을 앞두고 막연한 불안을 느끼거나 두려울 수도 있고, 이가 나거나 몸이 자라면서 여기저기가 아플 수 있다. 아기는 ‘엄마, 제가 곧 엄청난 성장을 할 거라서 좀 불안하네요’ 라던지 ‘어머니, 제가 크고 있어서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데 좀 만져주시겠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일단 울고 본다.
마루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너 나중에 내가 병원비 청구할 거야’라고 투덜대면서도 양쪽 손목에 손목 보호대를 차고 아기띠와 포대기를 동원해서 갖가지 방법으로 안아주었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보는 친정엄마는 '애를 그렇게 안아주지 마라'라고 한다. 시터 이모님이 마루 버릇을 잘못 들여놨다며 이모님께 아기 안아주지 말라고 전해달라고도 하신다. 친정엄마는 내 딸이 고생하는 것을 보기 싫다. 아무리 그게 손녀라 해도 내 딸 아픈 게 더 싫은 모양이다. 실제로 나는 손목이 약해서 두 번이나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고 피부도 변색되어 보기가 흉해졌다. 그런 손목을 보는 부모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고 안타까울지 충분히 이해된다. 남편도 비슷하다. 언제까지 안아줘야 하냐고 묻는다. 너무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할 때마다 안아주면 버릇 나빠지는 것 아니냐고. (그러면서도 다들 아기가 울면 기꺼이 안아주고 싶어 한다!)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아기가 버릇 나빠질 게 뭐가 있겠는가. 아기는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이다. 아기는 안아달라고 하고 나는 안아줄 수 있고 기꺼이 안아주고 싶기에 안아주는 것이다. 그럼 그럼, 당연히 엄마가 안아줘야지. 엄마는 허리랑 팔이 아프네, 너 때문에 너무 힘드네 투덜대면서도 당연히 안아준다. 그냥 안아주면 된다. (단,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서 엄마의 부담은 덜어줄 것!!)
몸으로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기껏해야 6-7세까지 안아주면 더 안아줄 수도 없고 안기고 싶어 하지도 않는 나이가 온다. 차라리 안아서 달랠 수 있는 나이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물리적으로 안아주지만, 나중에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