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마루 Dec 19.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쏘 스윗 낮잠

  아기의 낮잠 시간은 점점 짧아져간다. 가장 먼저 희생한 것은 잡다한 집안일이었다. 아기와 보내는 시간을 더 온전히 누리고자 집안일을 내려놓았다. 내게 집안일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요가를 하고 책을 읽는다. (https://brunch.co.kr/@marumom/30)

   나를 위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낮잠을 잘 잔 아기는 재충전되어 일어난다. 엄마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엄마의 피로는 가시지 않는다. 아기를 보면서 꾸벅꾸벅 존다. 잠깐 사이에 아기는 저 멀리까지 기어간다. 때로는 고양이를 쥐어뜯고 있다. 정신을 차리려고 커피를 마신다. 반짝 의식이 명료해지지만, 누적된 피로는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덮쳐온다. 


  많은 어른들이 말했듯 정답은 정해져 있다. 아기가 잘 때 엄마도 자는 거야.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못한다. 아기 옆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보다가 몇 번이나 얼굴에 핸드폰을 떨어뜨린다. 으 아파. 그러면 옆으로 돌아누워 베개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계속 읽는다.

  그런 정신으로 보는 책이 눈에 잘 들어올 리 없다. 몇 번을 같은 페이지를 읽고도 기억이 나지 않아 정신이 깨고 나서 다시 읽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지금 난 책을 읽고 있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는 최면을 걸기 위해서인 것 같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대체 엄마를 위한 시간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걸까? 홈쇼핑에서 살 수 있다면, 웃돈 주고라도 누군가에게서 얻어올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왜 엄마의 하루도 남들과 똑같은 24시간일까. 엄마는 1.5인분의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엄마의 시간은 보충되지 않을까. 점점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남편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애는 나 혼자 키우냐!


  하지만 나도 그렇게 컸다. 나 역시 마루처럼 엄마의 시간과 공간과 에너지를 먹고 자랐다. 자식들은 원래 그렇게 자란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도 태어난다. 하지만 엄마는 무에서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원래 있던 1이 분할된 존재이다. 그렇기에 원래 하던 일을 1 그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무시하고 살았으니 피로가 누적되고 삶이 이상하게 굴러갔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아기의 낮잠시간만큼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엄마에게도 낮잠이 너무 필요하다는 진리를 인정했다. 아기가 잘 때 엄마도 자는 건 진리다. 나는 이제 피곤하면 일단 낮잠을 잔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덤으로 얻은 여유 시간을 감사하며 책을 읽고 요가를 한다. 잘 자는 엄마는 아기와 잘 지낸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