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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26. 2022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구구와의 인연 - 안녕 구구 (1)

  구구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딸이고 동시에 엄마이다.


  2012년 겨울, 당시 살던 원룸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길고양이 구구가 퇴근하던 나를 따라왔다. 처음 한 번은 참치캔 하나를 따서 먹이고 내보냈다. 사회초년생인 나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기를 자신이 없었고 자신 없는 일은 시작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보이지 않자 정말 많이 궁금했다. 그러면서 혹시 다음에 따라 들어오면 반드시 기르리라 마음먹었다.

  몇 주 후 구구를 다시 만났다. 역시 또 따라 들어왔다. 이번에는 내보내지 않았다. 급한 대로 참치캔 하나를 따주고 다음 날 근처에서 고양이 사료와 화장실과 모래를 샀다. 아무리 봐도 배가 부른 것 같아 검진 겸 병원에 데려갔는데 놀랍게도 정말 임신한 상태였다.


  구구는 우리 집에 들어오고 2달 후 출산했다. 언제 출산할지 몰라 박스로 출산 집을 만들어주고 한참을 기다렸다. 퇴근 때가 되면 집에 새끼 고양이가 있을까 긴장하며 들어갔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평소와 다른 울음소리가 들려 벌떡 깼다. 구구는 한 마리씩 천천히 낳았다. 새끼 고양이는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막을 구구가 혀로 핥아 제거해주자 비로소 울었다. 네 마리째엔 꽤 힘들었는지 막을 제거하지 않으려 해서 대신 제거해줬다. 구구는 태반을 다 먹었다. 네 마리 새끼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모유를 찾아 빨았다.

  네 마리 새끼 고양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첫 접종 즈음해서 모두 입양을 보냈다. 한 마리 정도 함께 두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두 마리 이상 기를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고양이가 나가자 구구는 무기력해 보였다.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을 이제는 알겠다. 구구의 마음을 더 보듬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무기력이 무색하게 발정은 금방 찾아왔다. 한밤중에 이웃집 민망한 울음소리. 구구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곧바로 중성화 수술을 예약해서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수술 후 식욕이 폭발하여 급격히 살이 찐 구구는 뚱냥이가 되었다.


  뚱냥이 구구는 항상 나의 좋은 친구였다. 출근할 때 인사하고, 퇴근하면 센서등 켜서 반겨주고, 잘 때는 항상 가랑이 사이에 들어왔다. 간식도 좋아하지 않고 사냥놀이도 싫어했고 안아주는 것도 싫어했지만 나를 참 좋아해 줬다. 나 다음 순서가 남편이었다. 우리가 소파에 누워있으면 일단 내 배에 꾹꾹이를 하고, 내가 없으면 남편 배에 꾹꾹이를 해줬다. 구구는 우리와 함께 두 번 이사했고, 집이 바뀌면 이틀 정도 밥도 잘 먹지 않고 어두운 데서 나오지 않으려 했지만 곧 적응해주었다.

 

  구구는 내 출산에도 함께했다. 내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구구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구구는 그날로 꾹꾹이를 멈췄다. 남편 당직으로 혼자 잘 때도 구구는 항상 같이 있어줬고 배 위에 올라오는 대신 옆을 지켜줬다. 출산과 조리원 입소로 구구가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걱정되었다. 우리는 출산하고 조리원으로 가는 길에 집에 들러 구구를 만났고 마루도 인사시켜줬다.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본격적으로 마루와 구구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구구는 마루를 낯설어했다. (어른들은 고양이가 아기를 할퀸다며 같이 기르지 말라고 했지만 구구는 가족이기 때문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어른들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구구는 대부분의 시간 마루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고, 가끔 마루가 너무 궁금하면 역류방지 쿠션 가까이까지 오는 정도였다. 

  마루 100일이 좀 넘었을까, 구구가 갑자기 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생전 무릎에 올라오는 일이 없었는데 무릎에 올라오려 하고 집안일을 할 때도 주변을 맴돌며 본인의 존재를 과시했다. 구구 입장에서 '저 어린 인간이 오고 엄마가 나랑 같이 자지도 않고 나를 부르는 횟수가 현격히 줄었네, 이건 위험신호다, 엄마를 뺏길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구구가 안쓰럽고 특별히 더 잘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마루를 재우고 구구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기는 했는데 쉽지는 않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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