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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26. 2022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구구와의 인연 - 안녕 구구 (2)

  사실 구구는 좀 아팠다. 나의 임신 중반기, 구구는 뒷발가락에 있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아무래도 크기가 커지는 것 같다고 남편이 걱정하기에 수술을 시켰는데, 수술하고 2주는 제대로 못 먹었고 원래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중성화 수술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사실 놀랐다. 구구도 나이가 들어 수술 후 회복이 힘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수술 한 달 후, 귀에서 갈색 분비물이 조금씩 비쳤다. 동물병원 원장님이 귀가 더러워서 그런 것 같다고 세정을 정기적으로 해주라고 했는데, 오히려 악화되는 양상이어서 다른 동물병원에서 진찰을 했다. 이경으로 관찰되는 것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원장님이 예전에 비슷한 경우 종양이 있었던 적이 있어서 CT를 찍어보라고 권유해주셨다. 만삭이던 나는 도무지 진행할 자신이 없었고,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분비물이 덜 나오기에 출산하고 다음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 


  출산하고 한 달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이모님이 오신 후에야 동네에서 유명한 고양이 전문병원에 갈 수 있었다. 동네 의원이지만 정말 섬세하게 봐주셨다. 귀 깊숙이 보는 이경으로 정말 종양을 발견했다. 외관상 양성인지 악성인지는 모른다고 하셨다. 수술을 결정해야 했는데, 지난 발가락 종양 수술의 후유증으로 이번에 수술하면 구구가 정말 죽을까봐 무서웠다. 며칠을 고민했고 수술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수술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종양 수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종양을 떼어내고 보니 이도를 전부 침범한 악성 종양이었다. 고양이에게는 이도 종양은 흔치 않다고 했는데, 그 희귀한 병을 구구가 앓게 된 것이다. 전체 이도를 적출하기로 하고 일주일 만에 구구는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암을 완벽히 제거하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 1달 이내에 재발할 수도 있고, 재발한다면 재수술은 의미 없다고 하셨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수술 부위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엘리자베스 넥칼라를 두고 구구랑 나는 옥신각신했다. 넥칼라 때문에 숨지도 못하는데 온갖 스트레스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게 안쓰러웠다. 그래서 잠깐 풀어주면 구구는 뒷발로 수술 부위를 아주 시원하게 벅벅 긁었다. 그러면 쫓아가 넥칼라를 해 줘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 마루는 여전히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한 갓난아기였다. 나는 아픈 첫째와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 둘째를 기르는 느낌이었다. 구구는 복약과 드레싱과 따뜻한 케어가 필요하고, 마루는 그냥 내가 필요하다. 

 

  조금 크자 마루는 구구를 정말 좋아하게 됐다. 마루는 구구가 지나가면 까르르 웃었고 기회만 있으면 쫓아다녔다. 구구가 밥을 먹고 있으면 꼭 쫓아가서 옆자리에 앉고 가끔 사료를 훔쳐먹으려 했다. 애정 표현으로 구구를 얼마나 많이 쥐어뜯었는지. 그래도 구구는 도망갈지언정 보복하지 않았다. 구구도 마루를 좋아했다. 마루가 목욕하려고 물을 받으면 구구가 욕실까지 따라왔다. 마루가 자고 있으면 가까이서 냄새를 맡거나 같이 자기도 했다. 역류방지 쿠션이 꽤나 포근했는지 구구는 역류방지 쿠션에 누울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래서 역류방지 쿠션을 두고 둘이 옥신각신 하기도 했다. 그렇게 당해도 다시 마루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둘은 끈끈한 형제애(?)를 보이며 교감했다. 나는 우리 셋이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영원히 이 시간이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구구는 수술한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건강하게 지냈다. 

  하지만 4개월쯤 지나며 다시 분비물이 비치기 시작했다. 갈색 분비물은 막아둔 이도로 나오지 못하자 눈가를 타고 흘렀다. 암이 재발한 것이다. 처음부터 암이 남아있었기에 언제 재발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구구가 늙어서 암도 느리게 자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재수술은 의미 없다고 이미 선생님과 이야기했기에 암이 천천히 구구를 잠식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암은 존재를 과시했다. 갈색 분비물, 가끔 다리를 저는 증상 (신경 증상), 식욕 감퇴, 그리고 보행 장애. 조금 걸을 수 있으면 내 무릎에 올라와서 잠들었다. 마지막엔 일주일 넘게 뭘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나마 좋아했던 츄르를 내 손바닥에 조금 짜서 주려고 해도 냄새가 싫은지 고개를 돌렸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많이 울었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소리 내서도 울고 속으로도 울고 혼자서도 울었다. 

  

  복직을 열흘 앞둔 주말, 구구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한때 엄청난 뚱냥이었지만 한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구구는 앙상했고, 나오는 것도 없었다. 남편은 정신없이 우는 나를 달래며 장례식장을 알아봐 주었다. 우리 셋은 함께 장례식장으로 갔다. 구구가 재가 되어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마루와 나와 남편은 구구에 대한 좋은 기억을 이야기하고 구구를 그리워했다. 비가 갠, 화창한 5월의 저녁 시간이었다. 


  가장 슬픈 시간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눈뜨자마자 습관처럼 하는 말이 '구구야'인 줄 나도 몰랐다. 구구야, 하고 부르고 아차 싶었다. 이제 구구는 여기 없잖아.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구구 납골함을 서재의 가장 좋은 자리에 마련했다. 마루의 손이 닿지 않고 내 시선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 그리고 마루에게 구구가 여기 있다고 가르쳐줬다. 마루는 아직도 '구구 어딨지?' 하면 그 서재 자리, 아니면 구구의 그림을 가리킨다. 마루도 구구를 기억한다. 우리 집에 있는 뚱냥이 인형을 '구구'라고 부르며 좋아한다.


  그렇게 나는 첫 고양이를 떠나보냈다. 구구와 항상 함께 있었기에 나는 외로움을 덜 느꼈고, 마루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첫 1년을 더욱 충만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구구는 우리가 가장 오래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의 끝자락까지 함께 해주었고 충분히 슬퍼하고 복직할 수 있게 시간을 남겨주었다. 이토록 배려심 깊은 구구야,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마루와 나는 너에게 너무너무 고마워.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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