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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26. 2022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하루를 열심히 놀고먹고 자는 게 네 일이듯, 엄마도 출근하는 게 일이야

  아기는 자란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복직까지의 시계도 공평하게 흐른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줬으면, 얼마나 기도했을까.

  정말 이대로 엄마로 눌러앉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의사들은 육아휴직은 거의 받지 못한다. 출산휴가만 줘도 정말 고맙다. 퇴직을 강요하는 곳도 있다.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기에 남은 의사들이 일을 나눠서 처리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어 죄책감 때문에 충분히 쉬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38주를 꽉 채워서 일하고 바로 선택적 제왕절개를 하거나, 업무 도중 갑자기 양수가 터져 출산휴가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운이 좋게도 나는 상사의 확고한 신념과 주장 덕분에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출산휴가 90일을 다 쓰지 못하고 복직하거나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육아휴직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정말 좋은 직장이라고, 평생 다니라고 다들 말했다.

  그랬기에 이 죄송함과 감사함을 보답하는 방법은 제때 복직하여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만둔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복직 날짜가 두 자릿수로 내려오면서부터 마루에게 자주 이야기해줬다.

  마루는 하루 동안 열심히 놀고먹고 자지? 그게 마루의 일이야. 그리고 엄마는 직장에 출근하는 게 일이란다.

  엄마가 직장에 가더라도, 같이 있었을 때처럼 변함없이 마루를 사랑해. 

  그 말은 나를 세뇌시키는 말이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복직하고 6개월만 지나도 복직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좋은 점도 많다. 식사를 천천히 할 수 있고, 동료들과 수다 떨며 커피 한 잔 마시거나 산책을 할 수도 있다. 월급도 준다. 

  그리고 나는 내 일이 좋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마루가 19개월, 나는 복직 8개월 차이다. 

  여전히 기회만 된다면 전업 엄마로 돌아가고 싶지만, 소중한 환자들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출근했다. 

  마루야, 오늘도 이모님과 재밌게 놀고 맛있게 먹고 행복한 하루 보내! 그게 마루의 일이야.

  엄마는 엄마 일을 하러 출근할게. 우리 저녁에 다시없는 반가움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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