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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l 10. 2022

트루 그릿-더 브레이브

트루 그릿-더 브레이브


코엔 형제의 영화. 원작은 찰스 포티스의 1968년 소설.

이미 소설이 발표된 직후 1969년부터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유명한 영화로, 존 웨인이 애꾸눈 보안관 루스터 카그넌을 연기하기도 했고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경력도 있을 만큼 유명한 영화다.

이 영화의 주제는 '진정한 용기'에 관한 것인데,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상황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소녀 매티 로스는 겨우 열 네살(한국 나이로는 열 여섯)에 불과한 아가씨지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과감하게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 있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매티와 함께 움직이는 연방보안관 보좌 루스터 카그넌과 현상금 사냥꾼 라퓌프를 추동하는 것이 바로 매티라는 점에서 매티는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동력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깡패의 총을 맞고 사망하자 집안은 온통 슬픔에 빠져들지만 매티만은 슬픔보다는 복수를 먼저 생각한다. 

목장주였던 아버지의 사업도 돌봐야 하고, 아버지의 복수도 해야 하는 이 어린 소녀는, 무법의 서부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잘 아는 똑똑하고 현실적인 감각을 가졌다. 

코엔 형제가 자신들의 특징인 블랙 코미디를 거의 섞지 않고, 정통 서부극으로 만든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물론 서부극이라 해도 말타고 총을 쏘는 활극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 서부에서 일어난 무법자의 범죄와 그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활극보다는 각 인물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와 행동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연방보안관 보좌인 애꾸눈 루스터 카그넌은 아버지의 복수를 해달라는 매티의 요청을 거절한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고, 서부에서는 그렇게 죽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일일이 복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티는 집요하게 요청하고, 거액을 제시한다. 딱히 돈 때문이라기 보다는 루스터의 입장에서도 범죄자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해서 하는 수 없이 매티의 요구를 수락하게 되고, 여기에 현상금 사냥꾼 라퓌프도 동참한다.

영화는 대놓고 코미디 요소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결국 아이러니하고, 그 역설적인 상황에서 웃음-쓴웃음이든 재미있는 웃음이든-이 발생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코엔 형제다운 연출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복수를 실행하지만 자신도 많은 것을 잃게 되는 매티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루스터 카그넌을 찾아간다. 두 사람의 우정은 깊은 감동을 보여준다.


매티와 카그넌은 유사 부녀 관계가 되고, 여기에 라퓌프가 동참하면서 이들은 유사 가족을 이룬다. 매티는 아버지를 잃었고, 아버지 복수를 위해 연방보안관 보좌를 고용하지만, 카그넌은 매티의 요청을 거절한다. 현실이 냉혹하고, 매티와 같은 사건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그넌이 매티의 요청을 수락하고 범인을 잡으러 가는 이유는 매티의 슬픈 사정도 있겠지만, 매티가 딸 또는 손녀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카그넌의 사생활은 나오지 않지만, 카그넌의 나이면 매티보다 큰 딸이 있을테지만 카그넌은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카그넌의 존재를 가볍게 하면서, 매티를 보는 카그넌의 심리가 가족에 가까워지게 하려는 장치로 보인다.

매티를 따돌리고 범인을 잡으러 가는 길에, 매티가 용감하게 따라붙자 결국 매티를 인정하고 동행한다. 냉철하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카그넌이지만 그는 술을 자주, 많이 마셔서 안정감이 없다. 반면 현상금 사냥꾼 라퓌프는 성실한 삼촌 같은 역할을 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성실한 아들은 끊임없이 불화하지만 어린 딸(손녀) 같은 매티를 돌보고, 매티가 원하는 범인 잡는 과정을 함께 한다.

영화에서 매티와 카그넌, 라퓌프가 범인을 잡는 건 결과이긴 해도 본질은 아니다. 이들이 범인을 잡으러 길을 떠나 함께 하는 시간, 서로 툭탁거리며 보내는 시간,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서로 이해하고 애틋하게 생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길을 나서 범인을 추적하는 이들은 고난을 함께 하며 감정(애증)을 조금씩 두텁게 쌓아간다. 셋 모두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범인을 처치하는데, 매티가 독사에게 물려 목숨이 위태롭자 카그넌은 온힘을 다해 매티를 살린다. 카그넌은 해야 할 일은 했다며 매티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사라지는데, 그는 자신이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매티는 이 시기에 보기 드문 여성이다. 당차고 똑똑한 여성으로, 서부의 살벌한 환경에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어머니는 두 동생을 돌봐야 하고, 남편의 복수를 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는데, 매티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아버지를 죽인 범죄자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거래한 상인에게 돈을 받아내고, 카그넌과 현상금을 협상하고, 단지 카그넌에게 범인 잡는 걸 맡겨두지 않고 자기가 직접 따라나서 적극적으로 추적한다.

남자 어른도 가능하지 않은 일을 어린 여성이 해내는 과정을 보면서 타고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명하고 용감한 사람이 드물지만 있다. 매티는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이고, 다가오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리며, 마치 거대한 파도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는 배처럼, 자기 삶을 밀어부치는 사람이다.

매티는 결국 한쪽 팔을 잃게 되어 장애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농장을 운영하고, 자기 목숨을 살려준 카그넌의 행방을 알아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가 이동 서커스단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찾아간다. 매티가 카그넌을 찾아간 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그넌의 노후를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를 돌봐줄 마음으로 찾아갔지만, 카그넌은 며칠 전 사망한다. 

매티는 카그넌의 묘를 이장해 자기 농장 한쪽에 묻고 그를 기린다. 그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생명의 은인이며, 아버지의 복수를 함께 한 친구였으므로, 매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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