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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l 30. 2022

한산 - 용의 출현

한산 - 용의 출현


역사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역사액션 영화. 영화의 절반 정도를 일본군 진영의 움직임으로 채운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 일본군은 조선을 침략한 이후 육지 전투에서는 줄곧 승리하고 있었고,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두 번 패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광교산 전투에서 승리한 와키자카가 직접 이순신 함대를 격파하겠다고 자청한 건 일본군 전체의 사기와 깊은 관련이 있고, 조선은 일본군의 해군 보급로를 차단하지 못하면 조선이 패망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전쟁 초기 상황은 조선군이 싸울 능력도, 무기도, 사기도 없어서 일방 당하기만 했는데, 그 와중에 선조는 평양까지 버리고 의주로 도망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군은 승승장구, 사기충천하여 전세는 일본군이 절대 유리한 상황.

일본군의 입장에서 이순신 장군이 어떤 인물인지, 조선 수군의 역량과 전술은 어느 정도인지 아직 확실히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이때의 결과로만 보면, 일본 수군이 조선군에게 패한 건 분명했다.

일본은 섬나라로, 조선보다 바다를 더 많이 활용하고, 배를 운용하고, 배를 만드는 기술도 뛰어났을 거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의외로 조선 수군에게 패한 걸 두고 일본 수군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한 명분은 명나라를 정벌하러 갈테니 길을 내달라는 것이었고, 조선이 거부하자 무력으로 육로를 침탈한 것인데, 이는 물론 가짜 명분이다. 일본군이 명나라를 치려했다면 곧바로 배로 천진을 향해 나갈 수 있었음에도 조선을 공격한 건 이들의 계략이 뻔히 보이는 수였다.


조선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일본군은 의외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게 된다. 임금 선조도 도망하고, 양반들이 제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한 반면, 일부 양반, 민중과 중들이 '의병''으로 나서 일본군과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 일본군의 벼락같은 급습으로 조선땅은 풍비박산이 나지만, 곧바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면서 게릴라 전술로 국토의 여기저기서 일본군과 소규모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자주 나타나고, 일본군은 이런 의병의 복병과 게릴라 전술에 휘말려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 이순신 장군이 남쪽 바다에서 일본 수군을 무찌르고 있었으니, 일본군은 점차 전투력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을 '영웅'으로 부각하지 않은 것도 영리한 연출이었다. 이 시기만 해도 전쟁 초기여서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영을 책임지는 장군이었고, 여러 해군 장수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물론 그가 지휘관으로서 탁월한 전략, 전술을 구사한 결과 해전을 승리로 이끈건 사실이지만, 오로지 이순신 한 명만을 영웅으로 부각하는 건 자칫 영화가 단조로워질 단점이 있다.

여기에, 이순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원균 장군에 대한 묘사도 심하게 부정적이지 않은데, 원균이 판단력이 흐리고 용맹하지 못하다는 건 '난중일기'를 비롯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으니 그 이상 악랄하거나 멍청한 인간으로 매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되, 신파가 될 만한 내용을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한산대첩을 향한 클라이막스로 서서히 긴장감을 높이며 서사를 축적한다. 그 서사의 과정에 항왜, 조선군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기생, 일본군 밀정 등이 등장하면서 거대한 스케일이 놓칠 수 있는 핍진한 서사를 채워 넣었다.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 추앙하는 건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거북선을 제작한 나대용의 공로를 드러냄으로써,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훌륭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용맹하고 뛰어난 장군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휘하에 역시 용맹하고 뛰어난 부하 장수들이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의 사극에서 잘 드러내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함선 바닥에서 노를 젓는 격군들의 일그러지는 표정과 그들의 땀투성이 근육이 꿈틀거리는 모습은 당시 조선의 민초 한 명, 한 명이 일본의 침략에 맞서 온몸으로 싸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군에게 일본군의 정보를 전달하던 기생 정보름은 정체가 탄로나자 스스로 혀를 깨물어 자살하려 한다. 이런 꼿꼿한 기개를 가진 조선 여성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건 여성과 어린이다. 이들은 여러 겹의 억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면서도 나라가 어려울 때 누구보다 앞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었다. 군인과 남성은 국난에 맞서는 걸 당연히 여기지만, 그만큼 공도 차지한다. 반면 여성과 어린이, 노인은 희생의 대가도 보람도 없이 스러졌다.


한산 대첩의 마지막 전투를 보여주려고 감독은 이미 동래성 전투, 용인 전투, 이치 전투, 웅치 전투, 사천 해전, 옥포 해전, 안골포 해전, 부산포 해전 등 수 많은 전투를 보여준다. 이 장면들은 아주 짧게 나오거나, 언급이 될 뿐이지만 당시 임진 전쟁의 실체를 큰 그림으로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산 대첩의 전투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했지만 어색하지 않고, 거대한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명장면이다. 이 전투 장면이 역사적 고증을 얼마나 거쳤는지, 어느 정도 오류가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고증을 완벽하게 하면 바람직하겠지만,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일정 부분의 의도적 왜곡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걸 두고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역사 왜곡인가는 별도의 토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리는 역사적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우리의 역사를 두고 '국뽕'이라는 단어로 스스로 폄훼하는 경우가 있다. 국가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건 절대 찬성이지만, 임진, 정유 전쟁은 명백히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다. 

승리한 전쟁을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 대중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걸 두고 '국뽕'이라고 폄훼, 비난하는 건 오히려 자기 비하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임진, 정유 전쟁이 7년의 국난을 겪으면서도 끝내 패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걸 알고 있다. 반면 일본은 조선을 침략한 이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은 갈갈이 찢어져 막부 시대가 된다.

'봉오동 전투', '암살', '밀정' 같은 독립운동 영화나 이순신 장군을 그린 '명량', '한산' 같은 영화는 우리 민족이 외적의 침략에 맞서 굽히지 않는 기개를 보여주는 영화들이니, 이런 영화를 그저 '국뽕'이라고 비하하는 건 지나치다. 오히려 우리가 겪은 과거 고난의 역사를 더 드라마틱하게 영화, 드라마, 만화 등으로 만들어 훌륭한 컨텐츠로 생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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