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크
변호사로 활동하다 역사공부를 다시 시작해 미국 흑인의 역사를 깊게 연구하는 레베카 홀이 흑인 노예 가운데서 여성 노예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노예 반란과 여성 노예의 관련을 탐색한다.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잡혀 온 아프리카인은 대략 5,000만 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최소 30%에서 많게는 50%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걸로 알려졌다.
저자인 레베카 홀의 할머니도 해방된 노예였으며,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은 여전히 인종차별부터 갖가지 차별과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증언한다.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노예로 끌어오기 시작한 건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무려 400여 년 동안 이어졌으며, 아프리카인은 오로지 아프리카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노예로 전락해 백인들의 상품이 되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예로 전락한 흑인들은 짐승처럼 순종하며 살지 않았다. 다수는 노예의 삶을 참고 견디며 죽지 못해 살았지만, 일부 흑인들은 백인을 상대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였고, 백인들은 이런 흑인들의 격렬한 투쟁에 두려움을 가졌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오는 노예선에서는 선상 반란이 자주 발생했는데, 거의 50%에 이르는 선상 반란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다.
이때 배에 탄 흑인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높을수록 선상 반란의 가능성도 높았다고 하는데, 백인들이 배에 흑인을 태울 때, 남자 흑인들은 배 아래 좁은 공간에 가둬 두었지만, 여성과 아이들은 배 위에 두었고, 몸을 묶지 않았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여성들이 몰래 배 아래로 내려가 남성 흑인들의 족쇄를 풀어주었고, 흑인들이 백인을 살해하고 탈출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백인의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도 백인 가족을 살해하고 도주하거나, 백인과 맞서 죽음을 불사하고 투쟁한 기록도 적지 않다.
조선 중기가 되면서 하인들이 결사를 맺고 양반을 살해하는 '살주계'가 나타났다. 양반 이하의 계급에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인간의 존엄에 관한 인식이 눈을 뜨면서, 억압과 착취의 부당함, 동등한 인간에 대한 차별 등에 분노한 일부 노비들과 서자, 중 등이 모여 한줌밖에 되지 않는 양반을 살해하고 대동세상을 만들려는 구체적 시도가 있었다.
실제 '살주계'에서 포악한 양반 일가를 살해하고, 집을 불태우는 등의 행동도 있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생산 양식은 유럽의 '농노제'나 '노예제'와는 또 다른 형태였고, '중인', '평민', '천민'으로 나뉘어 구분하는 방식과 상대적 자율성이 높았다는 점이 '살주계'가 오래 존재하지 못한 이유다.
레베카 홀의 연구는 앞선 하워드 진의 연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레베카 홀이 하워드 진의 저서에서도 참고했을 걸로 짐작하는데,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1'에서 노예 무역과 노예 반란에 관한 내용을 꽤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그래픽노블은 흑인의 역사, 노예이길 거부한 흑인의 인간 존엄성 투쟁에 관한 내용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형식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그래픽노블'은 글과 그림을 떼어놓을 수 없지만, 글이 없고 그림만 있는 '그래픽노블'은 존재해도, 그림이 없고 글만 있는 '그래픽노블'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그래픽노블에서 '그림'은 글보다 더 중요하다. 이 작품(웨이크)에서 그림은 내 기준으로는 실망스럽다. 물론 그림이 글을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고, 상징성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림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그런 점에서 흑인 노예의 뿌리를 찾아가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한국에서 이두호 작가가 만화로 그린 작품은 내용과 형식이 뛰어난 성과를 거둔 보기 드문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