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작가 : 조 사코
출판 : 글논그림밭
만화책이지만,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이 만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정면에서 그리고 있다.
우리는 중동의 역사에 대해 많은 부분 무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접점이 약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너무 심하게 미국과 유럽 쪽 역사에 편향된 교육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동 뿐이랴. 아프리카의 역사는 어떤가. 우리가 수단이나 나미비아, 탄자니아 같은 나라들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강자의 역사, 승리한 자의 기록, 편향과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일 뿐임을 새삼 깨닫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역사를 말할 때도 우리는 미국의 '백인'들이 기록한 역사를 읽고, 판단한다. 미국인-주로 백인-들이 가장 충격적인 책으로 꼽는 것이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인데, 미국인의 주류인 백인들도 '미국민중사'에서 말하는 역사의 내용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그렇듯, 어느 나라의 역사든 기록은 왜곡되고, 편향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어떤가. 심지어 자기나라의 역사조차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려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사라니.
결국 이런 역사 공부를 하려면 혼자 책을 찾아 읽는 방법 외에는 없다. 올바른 세계관을 갖기 위한 가장 첫번째 단계는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배우지 않거나, 잘못 배우면, 그 위에 쌓는 지식은 모두 잘못될 수밖에 없다.
이 만화책에서 작가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에서 멀어진 1956년의 학살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 든다.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사람, 남자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수 백 명을 학살한 사건인데, 이런 처참한 학살 행위가 UN보고서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947년 이후 오늘날,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미국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여러나라들도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을 돕지 못하거나, 않는 이유는 그들 내부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즉,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와 결탁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집권층이 존재하는 나라는 '친서방' 국가로 분류되고, '반미, 반유럽'을 외치는 나라들은 미국에 의해 '테러국가'로 낙인 찍히고 미군의 침략에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운명을 갖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는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개인의 운명을 다루는 미시적 역사 기록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입장이라면 과연 어떨까.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떨까.
저항하다 죽는 것과 굴종으로 살아가는 것, 오로지 그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당신은.
조 사코는 '코믹 저널리스트'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만화(그래픽노블)라는 형식에 시사(국제문제, 정치, 경제, 인종, 분쟁 등)를 담아 기록한 것으로, 기존의 글로만 기록했던 저널리즘의 지평을 확대하고, 대중에게 하나의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역시 '가자 지구'에서 1956년 11월 12일에 발생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시점과 과거 상황을 오가며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형식은 만화지만 영상으로 그대로 옮겨도 될 만큼 형식미도 뛰어나다. 작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어렵게 만난 학살생존자 또는 그의 가족, 친척들의 구술을 통해 과거를 재현한다.
1956년 11월 12일,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지만,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은 간단치 않다. 이 시점(1956년)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점령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은 2차 세계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가운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유대인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한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 1948년이고, 이때부터 중동 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이슬람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종교적 갈등과 함께 영토 분쟁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집트의 국내 정치 상황과 이슬람 패권주의, 이집트와 영국, 프랑스, 미국 사이에 벌어진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 이집트 내부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온건파 사이의 갈등,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정치적 긴장, 범 이슬람 진영과 범 친미 진영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 등 복잡한 양상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동에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여기에 이스라엘은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업고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던 땅을 유대인들에게 뺐긴 것도 억울한데, 이집트와 이스라엘 전쟁 때 이스라엘군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가자 지구로 들어온 사람들은 허허벌판에서 움막을 짓고 살아야 했다. 마치 한국에서 남북한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땅에서 거지처럼 살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은 자신의 집, 재산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맨손으로 가자 지구로 들어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마져도 이스라엘군의 감시와 통제, 예측할 수 없는 학살로 인한 공포 속에서 늘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파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들 극우파는 주변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보다는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했고, 11월 2일 가자 지구를 침략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 남성들을 밖으로 끌어내 아무 이유 없이 집단 학살을 시작했고, 학살당한 사람은 최소 수백 명에 이른다. 생존자의 증언, 생존자 가족, 친지, 이웃의 증언, 학살당한 가족, 친지, 이웃, 친구의 증언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기록되기 시작한다.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인 아베드와 함께 다니며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그때의 생존자를 찾아나섰고, 그 과정을 최대한 면밀히 기록한다. 그가 조사와 취재를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을 때도 역시 이스라엘군에 의한 침탈과 학살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0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 1,417명이 죽었는데, 이 가운데 352명은 어린이였다. 5,300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체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미쳐날뛰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고,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함에도, 이스라엘은 폭력으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을 고려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저 미치광이의 태도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1956년에 일어난 가자 지구 학살 사건만 해도, 유대인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히틀러에게 당한 집단학살의 트라우마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도, 유대인들은 독일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만큼이나 악랄한 집단 학살을 저지른다. 대체 왜?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고,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떠돌아 다닌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 형태의 '국가'가 절실했다. 결국 피해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랜 동안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고, 멀쩡한 자기 집을 어느 날 갑자기 뺐기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황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이 점령지를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는 극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1948년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영역에서, 그것도 지리적으로 분리된 상태로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강제된 분단의 처지에 놓여 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스라엘군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어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일본군이 지금 서울 면적에 한국인 5천만 명을 집어 넣고, 서울 외곽 경계에 높은 담장을 두르고, 서울에서 나가거나 들어올 때마다 검문, 검색을 하며, 아무런 통지 없이 출입문을 닫아 걸고 몇날 며칠을 통행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필품도 부족하고, 인구 밀도는 엄청나게 높고, 경제 활동이랄 것도 없어서 거의 대부분이 실업자가 되고,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한 빈곤층이 90%에 이르고, 상하수도를 비롯한 기반 시설이 붕괴되어 거의 원시상태에 가까운 삶이라면, 폭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본군과 싸우고, 자살폭탄테러를 하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누구를 원망하게 될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놓여 있는 현재의 삶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방 사회 즉 제국주의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몸부림을 '테러'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대등한 상태에서 '분쟁'을 하고, 전쟁을 하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현실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폭행과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고 있으며, 지난 60년 동안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악의적으로 왜곡,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과거 유대 민족처럼 '국가'가 없고,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던 민족이어서 지금 처절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가해자 이스라엘의 악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의 팔레스타인 현실은 실재하는 지옥이라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