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4
네 번째 영화라서 기본 서사, 캐릭터 분석, 액션 등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분석이 많이 되었다. 권선징악을 구현하는 액션 활극. 많이 알려진 내용이니 줄거리는 생략하고, 조금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자.
1편은 서울의 조선족 범죄조직을 소탕, 2편은 베트남에서 납치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 3편은 한국과 일본의 마약 범죄 조직 소탕, 4편은 필리핀에서 사기 도박을 벌이는 범죄 조직 일망타진이다. 류승완 감독 영화 '베테랑'에서도 '서울 광역수사대'가 등장하는데,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재벌 3세의 범죄를 끝까지 추적한다. '부당거래'에서도 최철기(황정민) 형사는 범인 조작을 하고, 권력과 거래한다.
같은 경찰 영화라도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 진지하고 무거운 느와르 장르라면, '범죄도시' 시리즈는 액션에 중심을 둔 가볍고 통쾌한 형식이다. 앞으로 나올 '범죄도시'가 지금처럼 조직 범죄나 강력 범죄만 다룰지, 권력 범죄, 자본 범죄 같은 한국 사회의 본질적 범죄에 대해서도 다룰지 매우 궁금하다.
'범죄도시'의 마석도 형사가 권력 범죄, 자본 범죄를 때려 잡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잡을까. 지금까지 마석도 형사가 상대한 범죄자들은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자들이었다. 막강한 피지컬을 가진 마석도 형사는 범죄자와 일대일로 맞짱 뜰 때 그의 특기와 장점이 살아난다.
마석도가 범죄를 저지른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의 낯짝에 그 묵직한 펀치를 날릴 수 있을까. '범죄도시' 시리즈가 지금처럼 계속 액션 활극 오락 영화를 유지한다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동네를 무대로 하다 어느 순간 우주로 날아가는 것처럼, 영화 소재와 액션이 에스컬레이트하면서 지금과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아니면, 앞으로 영화 제작과 관련해 모두 여덟 편을 만든다고 했으니, 네 편이 남았고, 네 편 모두 지금과 같은 흐름을 유지하면서 악당 캐릭터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걸로 본다.
'범죄도시'는 시리즈로 나오지만,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은 모두 다르다. 강윤성, 이상용, 허명행 감독인데, 이상용 감독이 2편, 3편을 연출했다. 감독이 다르면 영화 스타일도 달라진다. 4편의 경우, 허명행 감독은 '신세계', '악마를 보았다', '헌트' 등에서 무술 감독으로 활약했던 경험 많은 감독이다.
지난 시리즈에서도 마동석의 액션은 시원하고 통쾌했지만, 4편에서는 이전과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다. 마석도 형사가 범죄자들과 타격전을 벌일 때, 발을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두 팔로만 상대를 때려눕힌다. 즉, 강력한 펀치가 마석도의 무기인데, 마석도 뿐 아니라 악당 백창기(김무열)의 직속 부하도 따로 무기를 들지 않고 복싱으로 마석도와 맞붙는다.
마석도의 체격은 헤비급에 해당한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178cm), 몸무게는 헤비급에 해당하는 120kg이어서 그 몸에서 나오는 펀치의 타격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마석도 역을 하는 마동석 배우는 실제로도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어 영화에서 범죄자들과 싸울 때, 복싱 자세가 정확하게 나온다. 마석도 형사가 딱 한 번, 주먹 이외의 신체 부위로 타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감독이 의도한 걸로 보인다.
헤비급 복싱 선수의 펀치는 1톤짜리 해머를 맞는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한다. 마석도의 주먹은 그만큼 강력하고 파괴력이 큰 무기이며, 어지간한 범죄자들이 마석도의 펀치 한 방으로 기절하는 건 당연하다.
4편에서 악당은 백창기(김무열)다. 그는 특수부대 용병 출신으로 나온다. 그는 말도 거의 없고, 표정도 무표정에 가깝다. 그는 지난 시리즈에 나왔던 악당들인 장첸, 강해상, 주성철을 뛰어 넘는 격투 실력을 가진 인물이다.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고, 심리적으로 늘 냉정을 유지하며, 머리까지 좋은 인물이어서 그의 잔인함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특수부대 군인 출신으로, 체계적으로 실전 훈련을 받은 만큼, 길거리 폭력배들과는 차원이 다른 몸놀림을 보인다. 시리즈의 모든 악당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는데, '아저씨'의 주인공 태식(원빈)이 보여주는 액션과 매우 비슷하다. 이건 백창기와 태식이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행동이 절제되어 있고,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에게 치명적 피해를 주려는 행동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다만, 백창기라는 캐릭터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다. 최강의 살인 기술을 가진 인물이면서 과묵하고,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사설 도박장 전체를 운영하는 운영자의 능력까지 가진 인물인데,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싸이코패스처럼 보인다. 퍼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작품 '리플리'에 나오는 주인공 리플리의 행동과 비교하면 매우 비슷하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리플리 같은 인간이 있긴 하겠지만, 감정과 감성이 사라진 인간에게 공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백창기는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악당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악행이나 평소의 행동에서 악행의 서사가 쌓이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즉, 백창기가 왜 이렇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의 내면이 어떻게 파괴되었고, 피폐해졌는지 보여주는 과정이 전혀 없이 현재의 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개인의 서사가 쌓이지 않아서 관객이 몰입하기 어렵다.
지난 모든 작품에서 악당들은 자기 서사가 없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악당에게는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원칙이 작동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이때 악당의 서사는 악당이 지금 저지르는 행위를 합리화 하는 방어기제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다.
'조커'에서 조커가 저지르는 온갖 악행이 그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관객은 조커의 어린 시절을 보며 인간적인 연민의 감정을 갖는다. 조커가 아버지에게 당한 참혹한 폭행 피해는 육체, 정신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고통의 깊이 만큼 그가 저지르는 악행의 크기가 크다는 걸 관객은 이해한다.
따라서 악당에게 서사를 부여할 수도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서사를 드러내는가는 중요하다. 영화의 주제에 따라 악당이라도 서사를 부여할 수 있고, '범죄도시'처럼 액션 활극일 때는 악당과 개인의 서사가 핍진할 이유는 사라진다.
'범죄도시 4'는 이전 작품들보다 코미디 요소를 더 많이, 자주 넣어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백창기가 보여주는 잔혹함과 장이수가 보여주는 웃기는 장면은 한 작품에서 같이 보이는 게 어색할 정도로 괴리감이 있다. 영화의 톤 앤 매너가 어느 정도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야 자연스러운데, 백창기의 잔혹함과 장이수의 코믹함은 극과 극의 대척점에 서 있어 관객에게 인지부조화의 감정을 일으킨다.
느와르 영화들이 사뭇 심각하고 진지하며 어두운 분위기를 띄는 건, '느와르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작품 '인생은 아름다워'는 나찌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귀도가 아들 조수아를 위해 죽음의 상황에서도 늘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비극과 희극의 상황을 교직하며 관객의 감정을 흔드는 연출을 보였다.
잔혹극 속에서도 웃음과 코믹한 상황은 있을테니 그게 시비거리는 아니고, '범죄도시'는 액션 활극 영화라는 특징을 최대한 잘 살리고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장치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배치되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공업적 웃음'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웃음을 만들어 내는 방식에서 '범죄도시'와 '극한 직업'을 비교할 수 있다. 같은 경찰이 등장하고, 악당을 일망타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관객을 위한 웃음 포인트를 곳곳에 배치한 것도 같다. '범죄도시'에서는 장이수가 감초 역할을 맡아 웃음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극한 직업'에서는 상황 자체가 웃긴다. 인물이 만드는 웃음보다는 상황이 만드는 웃음이 훨씬 재미있는 건 당연하다.
'극한 직업'에서 잠복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인수해 영업하기로 결정하고, 형사 가운데 한 사람이 닭을 튀겼는데, 장사가 너무 잘 되어 정작 본업인 '형사'의 임무에서 멀어지면서, '왜 맛있는데'라는 불평이 튀어나올 정도가 되면, 그런 상황은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말보다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아이러니할수록 코미디는 빛을 낸다.
영화의 내용말고, 이 영화를 둘러싸고 극장 배급의 문제가 있다. 전체 극장의 약 80%를 차지하면서 독점으로 인한 폐해가 있고, 영화의 다양성을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영화 예술이 대기업의 이윤 추구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범죄도시'는 기존 작품들이 크게 성공했기에, 기본 흥행은 보장되어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마동석 배우의 타격감 넘치는 액션과 최고 악당의 등장에 대한 궁금증이 관객을 끌어모으는 기본 전략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앞으로도 '그냥 나쁜 놈'만 때려 잡을 건지, '진짜 나쁜 놈'을 때려 잡을 건지가 궁금하다.
산업 측면에서 보면, '범죄도시' 시리즈는 투자자들에게 좋은 상품이다. 이미 세 번의 영화가 모두 크게 성공했고, 투자자(기업)들은 막대한 배당금을 가져갔으니,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가능한 적은 비용을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욕심이 발동할 걸로 본다.
관객이 식상해서 극장을 찾지 않을 때까지 작품의 내용에 변화가 없다면, '범죄도시' 역시 자본주의의 영화 상품 가운데 하나로 그렇게 거품이 커졌다 사라지는 모양이 될 확률이 높다. 그 자체로도 의미는 있겠지만, 한국영화에서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보면, 단순히 상업 영화로써 성공을 거둔 건 물론, 세계영화사에서 오래도록 남을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모든 영화가 '예술 영화'일 수도 없고, 그런 가능성과 실력도 없다는 건 분명하지만, 이미 앞선 영화로 많은 돈을 벌었다면, 앞으로 나올 작품에서는 뭔가 기존과 다른 작품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다크 나이트'는 미국의 '영웅' 영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면서, 단지 오락 영화가 아닌, 탁월한 예술 영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배트맨'이라는 영웅 만화의 주인공이 권선징악을 실행한다는 점에서 '범죄도시'의 마동석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울버린' 시리즈에서도 '로건'은 영웅의 몰락을 진지하고 무겁게 그리며, 죽음을 선택하는 로건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범죄도시'에서 마석도 형사와 악당 사이에 오로지 난투극만 보여줄 것인지, 그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깊이 있게 드러낼 지,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