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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May 04. 2016

새로운 형태의 도시빈민에 관하여

새로운 형태의 도시빈민에 관하여


2000년 이후 한국에서 '도시빈민'에 관한 대중적인 개념과 연구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드물게 '도시빈민'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것은 사회변화에 반영되지 못하고, 학문의 분야에서 머물러 있을 뿐으로, 고착된 사회문제의 개혁이나 변혁의 이론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도시빈민' 문제는 한국 뿐 아니라 이른바 '제3세계' 전반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회문제이며, 오늘날에는 경제선진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경제선진국에서는 슬럼가나 할렘, 노숙자 등을 '도시빈민'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도시빈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런 규정이나 개념을 학계, 언론에서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시빈민'에 관한 사회학적, 계급적 분석은 이미 끝났거나, 아니면 '도시빈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도시빈민'은 '도시'와 '빈민'이 결합한 것으로, 산업사회의 짙은 그늘의 부정적 현상이며,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특수한 존재들이다. '도시빈민'과 비교할 수 있는 '농촌빈민' 역시 최근의 사회학 주제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주제들은 인기도 없을 뿐 아니라, 학자들이 다루기에도 거북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도시빈민의 발생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그것은 이미 250년 전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도시빈민이 출현하게 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봉건사회의 농노, 농경시대의 경우 한 나라의 인민이 굶주리는 경우는 흔했지만 그들을 '빈민'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봉건시대나 농경사회에서도 빈민은 존재했겠지만, 노동력이 부족했던 그때는 누구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으면, 굶주림으로 죽지는 않았다. 생산력이 낮아 잉여수확물이 적었고, 지배계급이 착취 때문에 인민에게 돌아가는 식량의 양이 적었던 것이 문제였지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소외'의 문제는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 (자본주의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에서 도시빈민의 출현은 군사독재정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이면서 폭력적인 경향으로 나타났다. 필연적인 이유는, 한국이라는 변방-강대국에 둘러 싸인-의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고, 냉전체제에서 세계강대국인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과 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오로지 노동력만으로 수출을 통한 돈벌이를 하는 방법은 낮은 임금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매우 낮은 임금으로 경제선진국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노릇을 자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쏟아진 사회과학 서적들에서 이미 '도시빈민'에 관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끝났으니 여기서 말하는 건 필요없을 듯 하고, 2000년대 이후 논의가 없는 '도시빈민'이 2000년대 이전의 '도시빈민'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겠다.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촌에서 유입된 노동인구는 도시의 변두리나 공업단지 주변에 밀집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청년 노동자들이 기숙사에 거주하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면, 가족 단위로 이주한 농촌 인구는 도시 변두리에 정착해 저임금 노동시장에 편입되었다.

이미 도시에서 살고 있던 빈민은 도시재개발-자본의 이윤추구 사업-으로 밀려나 도시의 외곽 변두리로 이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달동네', '판자촌', '해방촌'과 같은 단어들이 이들을 상징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농촌인구와 도시인구의 비중은 꾸준히 반비례하면서, 지금은 도시 인구가 전체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정보화사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로 완전히 이행했고, 초기 도시이주 세대에서 한 세대가 지났다.


1960년대 국민소득이 200불에서 지금은 1만5천불까지 올라갔으니 그 사이 경제 발전은 수구집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적'이라고 과장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결과만을 말하는 방식은 반민주, 반인권적 패륜임을 알아야 한다. 그 사이 노동자와 농민이 겪은 고통은 외면하고, 묵살하면서 오로지 권력자의 치적을 위해 결과를 과장하는 방식의 주장은 천박하고 저열하며 비열한 주장일 따름이다.

국민의 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이 피땀 흘려 경제를 일으켜 세웠지만, 정작 그들은 그렇게 쌓인 부를 나눠갖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의 착취와 억압으로 질식당했다. 박정희 군부독재가 18년, 전두환 군부독재가 7년, 노태우가 7년까지 모두 32년의 군사독재 기간 동안 경제는 성장했지만 그 열매는 극소수 자본과 권력에게 돌아갔다.


절대 빈곤을 벗어나고, 보릿고개가 사라진 것에 대해 노인 세대는 독재정권의 치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들-박정희와 전두환 일당-을 칭송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실제 일을 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 자신임에도, 자신들이 일군 부를 착취한 자들을 은인으로 받드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전쟁의 공포는 독재정권보다 더 강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더라도 독재정권의 만행을 눈감고, 그들의 착취와 억압을 긍정하는 것은 전쟁의 공포와는 별개의 문제임을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어떻든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1990년대 이후, 정권과 자본은 나라 곳간을 털어 먹고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세계 자본의 공격으로 인민의 삶은 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구제금융 사태 이후,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더욱 격렬해졌고, 권력과 자본은 샴쌍동이처럼 변신했다.


지금도 전통적 형태의 '도시빈민'은 존재하지만 외형적으로 도시빈민의 거주지는 대개 '재개발'되었고, 도시빈민은 '청년빈곤'이나 '청년실업' 등의 주제에 묻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도시 변두리에 형성된 달동네, 판자촌은 민간 건설업자들에 의해 고층 아파트로 변하고, 그곳에 살던 도시빈민들은 더 먼 변두리로 밀려났다.

일부 운이 좋은 도시빈민은 영구임대주택이나 시영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삶까지 개선된 것은 아니다. 경제가 활성화되던 80년대는 일자리와 잉여 자본의 일부가 도시빈민에게도 돌아갔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중산층'의 위치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이후 더욱 가속, 심화된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도시빈민은 '하우스푸어'와 '청년빈민'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하우스푸어는 부동산 개발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에 의해 먹잇감이 된 서민들이다. 그들도 부동산(주로 아파트)이 투자와 거대한 잉여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이라는 욕심을 가지고 뛰어든 잘못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부동산 투기라는 사기를 친 것은 정부의 책임이고, 정부와 밀착한 자본의 책임이다.

은행에서 거액의 융자금 즉 빚으로 아파트를 구입하고 그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자의 압박과 원금 손실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소득은 분명 증가하고 있었고, 최저임금 보장과 각종 복지 제도들이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껍데기는 화려하면서 알맹이는 없는 하우스푸어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90%이상의 대학진학율과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의 취업난, 실업자의 양산은 정부와 자본의 무능과 계산된 의도로 인해 '청년빈곤'과 '청년실업'을 대량 발생하고 있다. 대학을 나와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대학이 하나의 시장-취업시장-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대학이라는 장사를 통해 이윤을 획득하는 자본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는, 산업예비군(실업자)을 최대화 하는 것이 자본에게는 매우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이 실업자로 존재하게 되면, 그들 자체의 경쟁이 격렬해지고, 경쟁은 단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게 된다. 즉, 청년들이 뭉쳐서 자본에 대항하는 힘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 해, 고급인력을 싼 임금으로 쉽게 부릴 수 있으며, 해고의 위협이 상존하고,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단결을 방해하는 기능도 하게 된다. 자본으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 둥지털어 불 때는 일석 삼조 이상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1970년대의 도시빈민이 도시 변두리 지역 산동네, 판자촌에 거주하는 건설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들로 대표되었다면, 2000년대 도시빈민은 번듯한 아파트에 살면서 빚에 허덕거리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하고 한숨 짓는 청년 노동자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격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친자본정부와 자본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지 않는 한, 빈민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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