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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an 10. 2017

[영화] 그랜드파더

[영화] 그랜드파더


'테이큰'과 '그랜토리노'의 어느 지점에 있는영화. 액션 느와르 장르를 노인인 박근형이 직접 연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월남파병용사'-'월남'이라는 단어는 베트남을 비하하는 단어지만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인 박기광은 금방이라도 폐차장으로 가야할 정도로 낡은 버스를 모는 버스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 자신이 이미 늙은 몸이어서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상황인 것은 낡은 버스와의 비교이기도 하다. 기광은 당연하게도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어서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한다.

게다가 기광은 가족이 이미 해체된 상황이어서, 자식들과의 사이도 멀고 남남처럼 살아가고 있다. 가족 해체의 원인은 나중에 기광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드러난다. 기광이 술을 자주 마시고, 술에 취해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기광의 폭력이 고엽제 후유증에서 비롯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한 집안의 비극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기광과 같은 '월남전 참전용사' 시대는 박정희 독재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미국의 대리전쟁에 가해자로 참전한 한국군 병사들은 '빨갱이와의 전쟁'을 치렀다고 했지만, 미국은 현대전에서 최초로 약소국가에게 진 전쟁이었고, 지금은 베트남과 수교했다. 

베트남을 '빨갱이 국가'라고 부를 명분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독재시대를 살았던 정신적 후유증과 베트남전에서 얻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정신과 몸이 함께 망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 기광이 아들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걸 느끼고 사인을 밝히려 한다. 늙고 병든 몸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사실을 알게 되고, 아들을 죽인 범인들을 처단하는 것 역시 노인의 몸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기광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한다.

남처럼 지내던 아들이 죽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걸까. 아들도 이혼을 하고 딸 하나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딸도 빚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되자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일까. 왜 진작 따뜻한 부모가 되어 자식과 오손도손 살아갈 수는 없었을까. 하나뿐인 손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라면, 왜 미리 다정한 할아버지는 되어주지 못한 것일까.


모든 후회는 때가 늦은 뒤에 오는 법이다. 기광의 탄식과 후회도 때가 많이 늦었다. 기광의 아들의 죽음도, 손녀의 고통도 모두 기광의 어리석음과 기광이 살았던 시대의 폭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광은 '보수'도 아니고 '수구'도 아니지만 어리석은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그의 죄인 것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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