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 원 제목은 ‘나를 위해 미스티를 틀어주세요’지만 이 제목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는 영화의 스릴러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제목이어서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1971년 작품이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한 작품으로는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데, 놀랍게도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이미 이때 상당히 자리 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다. 특히 영화의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시나리오가 상당히 치밀하게 계산되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인트로 역시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 ‘샤이닝’의 시작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부감으로 찍었는데, 놀랍게도 이 영화도 해변을 따라가는 도로 위의 자동차를 부감을 포함한 다양한 각도로 긴장감 있게 찍고 있다.
40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이 시기의 실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삶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평전을 보면, 그가 많은 여배우들과 스캔들을 일으켰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아내와 이혼하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지만, 그가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있음을 인정했고, 그 자신이 여성들과의 염문을 비교적 솔직하게 밝혔다. 그의 사생활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영화에서 그가 겪는 고통은 그의 현실의 삶에 대한 상징적 보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스티븐 킹의 소설과 영화 ‘미저리’와 닮은 점이 있다. 라디오 디제이인 데이브에게 접근하는 여성 에나벨은 지나친 집착과 분열적 행동을 보이면서 데이브의 삶에 깊이 들어가려 한다. 이미 과거에 많은 여성들과의 염문 때문에 사랑했던 애인 티나가 떠났다가 오랜만에 우연히 다시 만나면서 데이브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티나에게 더 집중하기로 약속하지만 에나벨로 인해 그의 생활은 엉망이 된다.
‘미저리’에서도 소설가의 열렬한 팬으로 자처하는 간호사가 교통사로로 다친 소설가를 집에 가둬 놓고 자신을 위한 소설을 쓰라고 명령하면서 발생하는 스릴러다. 어느 한쪽의 집착이 극적 긴장도를 높이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데, 두 영화 모두 여성이 집착하고, 관계를 파탄내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도 비슷하다.
상식적으로 보면, 관객은 에나벨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평범한 연인의 관계라면 이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두 영화-미저리와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이름이 있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즉 무작위의 다수에게 알려진 사람에게는 특수하게 집착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고, 그 사람의 정신상태는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에나벨은 데이브의 가사도우미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정신병이 인정돼 치료감호소에 갇힌다. 에나벨이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분명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에나벨은 다시 바깥으로 나오고, 데이브의 애인 티나에게 접근해 데이브를 끌어들인다.
인간관계에서 집착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인가를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집착과 정신병의 경계에 서 있는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남성이어도 상관없고, 어느 경우든 일방적인 관계는 파탄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