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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Sep 20. 2015

편도선이 붓다

취중진담을 말하다_006

편도선이 붓다


편도선이 부었다. 꽤 오랜만이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과 왼쪽 뒷머리에 전달되는 통증이 심각하다. 이 느낌은 오래 전에 자주 겪었던 바로 그 '편도선염'에서 오는 통증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30년도 훨씬 더 전에, 나는 자주 편도선이 부어 고통스러웠다. 침도 삼키지 못하고, 열까지 높아져 밤새 끙끙 앓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마취도 하지 않고, 메스로 부어 있는 편도를 찢고 피고름을 빼냈다.

편도선이 붓는 이유는,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편도선은 우리 몸의 건강을 점검하고,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따라서 편도선이 붓기 시작하면 그만큼 몸이 무리를 했으니 쉬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려서 그런 상식을 알 리 없었던 나는, 아니, 설령 알았다고 해도 그런 '몸의 경고'를 들을 만큼의 여유조차 없었기에 날마다 하루 12시간의 노동과 왕복 6시간의 출퇴근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새벽 첫 차를 타기 위해 일어나면, 베갯잇이 코피로 물들어 있었고, 세수를 할 때마다 세수대야는 붉은 핏물이 들었다. 그리고 편도선이 붓기 시작했다.

삶이 고통스럽다던가, 힘들다던가 하는 느낌 조차도 갖지 못할 만큼 어리석기도 했고,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때여서, 편도선이 부을 때마다 죽을 만큼 힘든 육체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개돼지처럼 묵묵히 살아갔다. 우습게도, 죽을 만큼 힘들 때는 오히려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그때 의사는, 스무 살이 넘으면 편도선이 붓는 일은 거의 없을 거다,라고 말했다. 아직 어려서 면역력이 약했던 때, 힘겨운 육체노동을 했기 때문에 편도선이 자주 부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무 살이 넘으면서 편도선이 붓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그때는 이미 힘에 겨운 육체노동에서도 벗어난 상태였다.

침을 삼키기 어려운 상태에서 오전에 병원에 가야하나, 더 참아볼까 고민하다 오후에 병원에 갔다. 의사는 먼저 부어 있는 편도선에 마취액을 뿌렸다. 몇 분을 기다려 의자에 앉자, 고름을 긁어낸다며 입을 벌리고 '아~~'소리를 내라고 했다. 

의료기구가 입에 들어오자 욕지기가 났다. 본능적인 몸의 반응이다. 욕지기와 함께 눈물이 나왔다. 몇 번의 욕지기를 한 끝에 처치는 끝났다. 생각보다 쉽고 짧게 끝난 것이 신기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것일까. 많이 아프지도 않았고, 시간도 짧았다.

메스로 편도선을 찢을 때의 그 통증과 뱉어낸 피고름의 끔찍한 형상을 기억했던 내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주사를 맞고,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아 와 약을 먹었다.

하루가 지나자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침을 삼키는 것도 부드러웠다. 현대의학의 혜택을 톡톡히 본 것이다. 이틑날 병원에 한 번 더 간 것은, 거의 의례적이었다. 이미 외과적 처치만으로도 상황은 끝난 것이고, 만일을 위해 소염 주사를 더 맞고, 약을 하루치 더 처방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편도선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약을 먹고 나자 위가 쓰리고 아팠다. 약이 너무 독했나 보다. 간헐적으로 위를 훓고 지나가는 통증 때문에 새벽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목의 통증보다는 덜 하고, 참을 수는 있었지만, 위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간헐적인 통증도 꽤 고통을 주었다.

부모님에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 받아, 살면서 큰 병치레를 하지 않은 것을 늘 부모님께 감사한다. 가난하게 자라는 아이가 병치레까지 한다면 얼마나 살기 고역이었을까.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편도선이 붓는 것 말고는 병원에 가 본 일이 없고, 나이 들어서도 특별히 아픈 곳이 없으니 마음으로 늘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다. 다만, 한동안 편두통에 심하게 시달리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이번에 편도선이 부은 것이 큰 사건이었다.

편두통이 심할 때는, 러시아 혁명 이후 많은 혁명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을 생각했다. 그들은 혁명이 성공한 이후에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정치적 탄압이 아닌 다음에는 거의 지병 때문이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편두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말한다면, 어리석다고 말하겠지만, 그만큼 인간은 질병 앞에 무기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편두통이든, 어떤 질병이든 견디기 힘든 선까지 치달으면 인간은 생존보다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존엄성을 지킬 수 있기도 하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불행한 삶이다. 가난해도 건강한 사람은, 희망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건강하면서 어리석게 살아갈 것인가, 병약하면서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존재의 기본은 '건강하게 생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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