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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Sep 24. 2015

티타임

EIDF_2015

2015-티타임


칠레.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들이 졸업 60년 이후에도 꾸준히 만나며 우정을 나누는 영화.

칠레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은 할머니들의 모임. 이 할머니들은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고, 이제는 모두 은퇴해서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음에도 집에는 더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정부들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60년의 시간이 지나고도 여러 명의 할머니들이 만나왔지만, 해가 갈수록 동무들의 빈자리가 보인다. 할머니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소소한 일상이거나 젊었을 때의 추억이거나 남편과 관련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주 잠깐, 여기 모인 할머니들의 정치적 성향이 '좌파'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 할머니들은 아무리 멋있는 남자라도 '우파'는 싫다고 말한다. 우파들은 마초, 남성우월론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다른 남미 국가들도 비슷하지만, 칠레는 특히 혹독한 군사독재정권의 억압을 겪은 나라다. 칠레, 하면 가장 먼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떠오른다. 합법적 선거에 의해 남미 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칠레는 이때만 해도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국가였지만, 미국(CIA)의 공작으로 피노체트가 군부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옌데 대통령을 폭살-대통령궁에 비행기로 폭탄을 투하해-시키고 권력을 잡은 이후, 칠레는 암울한 나라로 바뀐다.


피노체트의 독재가 심각한 상황이던 70년대 중후반에 이 할머니들은 20대의 한창 청년들이었다. 당시 부르주아들은 아옌데 정권이 무너진 것에 환호하고, 피노체트의 독재를 찬양했다. 많은 지식인들은 피노체트에 반대했지만, 고문, 납치, 학살이 일상이었던 당시에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칠레 사회 역시 가부장, 남성우월주의 사회였고, 여성들의 사회활동은 마땅치 않게 여겨졌다. 결혼한 남자들이 여러 여성과 불륜 관계를 갖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며,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은 쉽지 않았다.

여든 살을 넘어가는 할머니들의 모임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괴롭고 가슴 아픈 과거보다는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만을 남기려 한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동무들의 빈자리가 늘어가면서, 이 모임의 끝도 머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손녀가 기록한 이 필름은, 그러나 할머니들의 역사적인 경험이 드러나지 않아서 퍽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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