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김주영의 삶
김주영 이야기 – 김주영의 삶
2016년 8월 2일, 나는 꿈에 그리던 [객주문학관]에 입주했다. 객주문학관은 작가를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창작관’에는 여러 명의 작가들이 묵으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었다.
작가 김주영의 작품을 처음 읽은 후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김주영 작가와 그의 작품 ‘객주’를 기념하는 문학관이 생겼고, 그 문학관 안에서 생활하며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작가 김주영을 알게 된 것은 10대 때였다. 1970년대 중반에 나는 10대였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시간만 되면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우연히 그의 소설을 읽게 되었고, 소년이 주인공인 그의 단편들은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소년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난했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으며, 그리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과 나의 삶은 꽤 비슷했고, 작품 속 소년들과 나는 동질감을 가졌다.
내가 작가 김주영을 좋아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진으로만 본 그의 외모 때문이었다. ‘훤훤장부’라는 말 그대로, 김주영은 남자가 봐도 반해 버릴 만큼 잘 생겼다. 큰 키(180cm)에 배우 뺨칠 정도로 잘 생긴 얼굴을 사진에서 보고는, 곧바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김주영은 여든을 앞둔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다. 남자로 태어나 ‘훤훤장부’의 외모를 갖춘 것만도 큰 행운인데, 글솜씨까지 남달라 좋은 작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김주영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였다. 김병익 선생이 말한 것처럼, ‘김주영을 볼 때마다 그가 벗어나려고, 지우려고 애써온 그의 본래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가 저렇게 흔쾌하게 웃고 허튼소리들로 주변을 웃기며 큰 제스처로 주위를 활기차게 만들고 시원스레 일들을 처리해나가지만, 저 안은 여전히 아프고 괴롭고 외로움이 잠겨 있어 겉으로 웃고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겠다 싶은, 내말한 공감의 회로를 되살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더구나 인간의 운명에 아파하되 선의로 웃음을 웃는 사람일수록, 겉장만 훑고는 속도 다 알아버렸다는 경솔을 범하지 말 것을, 특히 김주영에 대해서는 그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그의 내면과 거기서 솟구쳐 나오는 그의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임을, 나는 간곡한 마음으로 전하고 싶다.’(김병익, <김주영 깊이 읽기>)
70년대의 초기 작품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김주영의 내면은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작품 속에 묻어나오더니 노인이 된 김주영은 ‘잘 가요 엄마’라는 소설에서,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아들의 겨울’이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홍어’, ‘멸치’, ‘빈집’ 등에서도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 있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으나, 사실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의 고향과 어릴 때의 체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김주영과 관련한 자료를 모아 왔고, 그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읽었다.
그의 작품과 삶을 알아갈수록, 나는 운명적으로 김주영이라는 작가의 삶에 끌릴 수밖에 없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산골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고,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역시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었던 천둥벌거숭이의 어릴 적 삶과, 자신의 운명을 늙은 소처럼 수굿하게 받아들이고 묵묵히 앞을 보고 걸어왔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때, 나는 어린 김주영이 가졌던 외로움과 슬픔의 내면으로 일렁이는 그에게 동질의 느낌을 갖게 된다.
게다가 ‘엄마’는 어떤가. 그가 일흔이 넘어 쓴 ‘잘 가요 엄마’를 거푸 읽으면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나 역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하지 못했던 불구의 감정을 가졌던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한 인간성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무수히 많은, 좋아하는 작가들의 ‘문학과 삶’을 기획해 놓고, 가장 첫 번째로 김주영을 선택한 것은 그의 작품과 문학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었고, 내 아버지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임을 고백해야겠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이것도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아버지의 역할이 사라진 가정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대체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내 주변의 인물들 가운데는 그럴 사람이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어른들이란 대개 막노동꾼들이거나 되먹지 못한 불쌍놈들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주영의 발견은 내게 잠재했던 ‘아버지 콤플렉스’를 잠재울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객주문학관 창작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작가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의 잠재의식 속에 ‘아버지’의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쓴 작품과 그의 외모 모두에서 나는 내면의 허기와 외로움을 달래 줄 정신적 자양분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이렇게 객주문학과 창작관에서 감격어린 원고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김주영 선생님께 마음 깊이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늘 창작관에 입주한 작가들을 보살펴 주신 박상우 작가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 동료 작가들께도 감사한다. 또한 객주문학관 직원들의 전폭적인 도움과 지원으로 마음 편하게 창작관 생활을 할 수 있어 작품을 끝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두루 깊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