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동지와 펜
선물받은 펜은 하얗고 예쁘고 잘 써졌다
텔레비젼에서 차 한잔 값이라며
인기 아나운서가 웃으며 선전하던 그 펜
그 펜은 부드럽게 잘 써져서
나도 모르게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하얗고 귀여운 그 펜에 박힌 ‘마이크로’
세라믹펜은 신흥정밀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아아, 그곳은 어디인가
공단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사업장
열 네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기아임금이
권력에 빌붙은 개같은 자본가의 손에서
칼처럼 휘둘러지는 곳
시간 외 수당, 공휴일 특근, 월, 연차 수당
아가씨의 생리휴가까지
기름을 짜듯 마지막 한 방울 노동력까지
철저하게 수찰하여 착취하는 곳
노동자의 피가 마르고 뼈가 깎이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화공약품 유독가스
침침한 불빛 아래서 서서히 젊음은 썪어들어가고
핏기잃은 얼굴에 웃음마져 떠나버린 곳
수 많은 노동자의 분노와 한숨이
먼지처럼 내려앉아 쌓이는
죽음의 사업장 그 속으로
호랑이의 아가리 그 속으로
폭탄을 짊어지고 그 불 속으로 뛰어든
동지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으니
박영진 동지
열 네시간의 노동과 십만원의 월급
악마의 그림자같은 산업재해와 직업병
사람답게,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는 절규로
저 악랄한 자본가의 썪은 가슴에
저 흉악한 독재자의 피 묻은 총칼에
거대한 활화산으로 타올랐던
이 땅의 노동자, 순결한 청년
동지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스러졌지만
동지의 투쟁은 영원히 살아나
노동자 해방과 통일의 그 날이 올 때까지
끝내 살아남으리라 약속하며
동지가 만든 펜으로,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동지의 뜨거운 함성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