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기숙사 방에 쓰러진 순이야
공단 적막한 거리는 오후의 햇살에 눈물겹고
바람마져 가을이라고 호사스러운데
기숙사 차가운 온돌 위에 네 몸은
몸부림치는구나 짐승처럼 어리석음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병든 열여덟 육신은
오후근무 빠진 것만 오히려 미안해하고
시골집에 부칠 이번 달 송금액이 적어질까
시들어 가는 젊음은 보상받을 길 없는데
너는 걱정만 하는구나
너의 젊음은 병들어간다 지금도
섬유먼지와 쇳가루가 폐에 켜켜로 쌓이고
위장병과 생리통으로 고생하면서
잔업과 철야에 몸을 축내며 모은 돈은
아버지 수술비와 동생 학자금으로 탕진되고
모처럼의 휴일날도 갈 곳이 없어 돈이 없어
눈부신 햇살을 피해 기숙사 방으로 기어든다
청춘과 낭만이 흥청거린다는 명동 무교동
너무나 딴 세상같아 무섭고 두렵기만 하고
일 안하고 잘 사는 년놈 너무 많아
울화통이 터지고 어처구니 없어
할 수 없이 기어든다 기숙사 썰렁한 방으로
이번 추석에는 시골 내려간다고
잔업도 즐겁게 해치우던 순이야
삼십프로 보너스로 엄마 새 치마나 사드려야겠다고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은 다가왔는데
너는 쓰러져버렸구나 기숙사 습기찬 방에
썰렁하고 적막한 공간 속에서
미싱을 탈 때면 그나마 잊어버리던 기억
가난한 시골이 너를 더 괴롭히는구나
고생으로 쪼그라든 새까만 부모님
아버지는 벌써 삼년 째 온돌을 지고
어머니는 품앗이로 손발이 갈쿠리가 되었는데
아직도 가난하기만한 시골집 여전하고
배고파 떠나온 고향 변한게 없어
식사 때마다 목이 메이던 순이야
악착같이 돈을 모아 논밭을 사서
보란 듯이 살아보겠다던 네가
쓰러졌구나 기숙사 어두운 방에
공장기계와 같이 너의 젊음도 마모되고
먼지와 소음에 찌든 청춘은 시들어 간다.
못 배우고 가난한게 죄라면 죄이지만
꽃다운 젊음도 공장에서 보내고
희망도 미래도 공장에서 이루려했는데
얻은 것은 병든 몸 시든 영혼 뿐
철지난 꽃잎처럼 떨어져버리는 삶을
누가 알아주랴 누가 어루만져주랴
기숙사 방에 쓰러진 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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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 구로공단 주변에는 '닭장'이라고 부르는 많은 연립주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쪽방'이라고도 합니다. 방 하나를 판자로 막아 두 개로 만들고 노동자에게 월세를 줍니다. 공장 기숙사에 입주하는 노동자는 그나마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숙사든 닭장이든 노동자들은 겨우 잠만 자는 공간이었으니까요. 이 시에 등장하는 여성노동자는 실제로 제가 공단의 한 쪽방에서 목격한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어디가 아픈지 그 좁은 쪽방에 쓰러져 있던 그 어린 여성노동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