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을 오르며

창작시

by 백건우

새벽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다 오르다 지치고 힘겨워도

어두움, 밤지나 빛 밝아올 때까지

오르고 기어올라 무릎이 닳아 허연 뼈 드러나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미래처럼 아득한

산을 오르다 기어 오르다

능선마다 얼룩진 부끄러운 역사를

땀과 눈물로 지우며 피로 씻으며

아직도 멀기만한 정상과

그 정상을 향한 몸부림으로

우리들의 가슴이 다 무너져 내려앉아도

뼈마디가 갈라져 산산이 흩어지고

가루로 사라져버릴지라도

산을 오르는 우리들의 발길은 멈출 수가 없는 일이다


새벽은 아직 저 산 너머에 있고

여기는 미명조차 스미지 않는 어둠의 세계

사람들은 새벽을 맞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하나 둘 산을 오른다 숨죽이며 다소곳이

은밀한 눈빛을 나누며 꺼지지 않은

불씨를 가슴에 지닌 채 조용히 발을 옮긴다

발길에 채이는 돌부리도 눈물겨운 이 땅

옷깃을 스치는 이슬달린 풀잎에서도

흙내음은 묻어나는데

어둠 속에서도 생명은 끊임없이 살아 숨쉬고

역사는 더욱 그 뿌리를 깊이 내리우며

사람들은 줄을 이어 역사의 줄기를 향해 오른다


산너머로 쪽빛 하늘은 새벽으로 열리고

밤새 산을 오른 사람들은 정상에 모여 이슬로 얼굴을 씻는다

가슴에 담았던 불씨를 모아 따뜻한 불을 피우고

새하얀 동정을 단 옷깃을 여미어

조용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의 얼굴엔

산과 같이 확신에 차고 겸허한 용기가 서린다

새벽을 알리는 횃불이 산꼭대기에 피어오르면

산 아래 사람들은 저마다 간직한 불씨를 살려

골목마다 횃불을 걸고 거리로 나온다

새벽과 함께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고

불을 밝히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잃었던

자유와 신화가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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