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하루
역사나 시대를 배경에 깔고 만든 영화는 그 배경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다룬 영화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다른 나라의 역사나 시대적 배경이라면 영화를 보고 나서라도 공부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영화는 시대적 배경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사에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배경이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다. 내전이 끝나고, 유엔이 전쟁을 감시하고 있으며, 세계의 구호단체들이 보스니아 주민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치는 상황이다. 마을 주민이 먹는 우물에 누군가 시체를 던졌고, 구호단체에서는 이 시체를 건져내 다시 주민들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려고 시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밧줄이 필요한데, 누구도 밧줄을 가진 사람이 없고, 이들은 밧줄을 찾으러 다닌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내전을 치른 보스니아의 상황을 드러낸다.
우물에 빠진 시체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사체를 봤으며, 죽음과 사체에 무감각해진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물에 빠진 사체는 익명이다. 그는 그저 하나의 도구이자 사물에 불과한데, 사람의 죽음을 사물로 취급하는 건, 감독이 무감각해서가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그동안 얼마나 참혹했던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의도를 이해하면 오히려 마음 아픈 내용이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여전히 어떤 세력들은 길에 지뢰를 심어 놓고 죽은 소로 길을 막는다. 소를 피해 가려다 지뢰가 터져 죽거나 다치게 만들려는 의도다. 직접적 살해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곳곳에 죽은 사람들이 보인다. 전쟁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구호단체 사람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우물을 복구하는 것-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군인들이 방해하고, 유엔군이 저지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입지는 매우 좁고, 할 수 있는 영역도 제한되어 있다. 우물 하나를 살리기 위한 일이 이렇게 힘들고 까다로울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마을은 성한 집이 드물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졌다. 음식이 부족하고, 위생 상태는 엉망이고,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죽은 사람이 있어서 슬프고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무엇보다 종교가 다르고, 민족-보스니아, 세르비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학살한 사람들 사이에서 독가스처럼 피어난 불신의 감정이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지만 죽고, 죽은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영화는 내전의 이유나 원인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의 일과를 통해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전쟁으로 피폐한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의 피해자는 오롯이 평범한 민중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576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