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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May 05. 2019

나영석 피디의 의도

스페인 하숙을 보고


집에 텔레비전 없이 지낸 시간이 15년이다. 여기 집을 짓고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아예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고, 무엇보다 광고가 너무 많아서 두 가지 면에서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텔레비전에서 편성해 방송하는 내용들의 99.9%는 안 봐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내용일 뿐아니라, 오히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텔레비전 방송의 편성은 사회의 체제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숫자는 많지만, 거기에서 방송하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거나, 연예인들이 나와서 잡담을 하거나, 연예인들이 나와서 밥을 먹거나 여행을 한다. 그리고 광고를 한다. 시청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리모콘으로 어느 방송국을 선택해도 광고를 피할 수 없다. 홈쇼핑 방송은 마치 일반 방송처럼 상품 판매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방송하고, 사람들은 상업광고 방송을 보면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누른다.
텔레비전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태도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할 수 있는 행위는 무언가를 먹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뜨개질은 할 수 있지만, 생각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지는 못한다. 텔레비전에서 내보내는 정보가 머리를 채우면, 다른 정보를 받아들일 여유가 사라진다. 뇌는 그 정보의 질을 판단하지 못한다. 정보가 고급인지, 쓰레기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이성'인데, '이성'의 발달은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 결국 텔레비전의 대부분 쓰레기같은 정보가 뇌를 통해 들어오면, 뇌는 그것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저장과 삭제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 쓰레기 정보가 들어가면, 그가 알게 되는 정보는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 대신 그 시간만큼 책-당연히 좋은 책-을 읽는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1인당 독서량이 1년에 한 권이 채 안된다는 통계가 있는 걸 보면, 한국사람 대부분은 책을 읽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방송 프로그램에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스페인 하숙'이다. 나영석 피디가 예전에 만들었던 일련의 프로그램들-삼시세끼, 윤식당-을 봤는데, 이 프로그램 역시 그가 만들었다. 나영석 피디의 이 작품들은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르 면이 있다. 나영석 피디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고,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스페인 하숙'이 기존의 '삼시세끼'와 '윤식당'을 콜라보한 것이라는 세간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삼시세끼'의 성공은 프로그램 포맷이 신선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의 찰떡궁합이 빚어낸 환상의 조합 때문이었다. '스페인 하숙' 역시 차승원과 유해진의 콤비가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차승원이 만드는 요리와 유해진의 설비가 결합했으며, 두 사람의 태도가 마치 부부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다시 두 가지 함의를 갖는다. 차승원이 요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관행에 따르면 '여성' 또는 '주부'의 역할을 맡는다. 반대로 유해진은 주로 바깥 일을 하면서 '남성'의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남성이기 때문에 동성의 관계 즉 성소수자들의 역할 분담 같은 느낌도 주게 된다. 이것은 나영석 피디나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리얼리티 방송을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상징적 의미이기도 하다.
'스페인 하숙'에서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요리와 설비가 내용의 핵심을 이루지만, 하숙집 있는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것은 단지 순례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숙을 하겠다는 의도에서 확장해, '길을 떠나 낯선 곳에 서 있고자 하는 사람들 로망'이라는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은 기획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방송은 그런 많은 사람의 욕망을 반영하고, 상품(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판매(방송)한다. 떠나는 것에 대한 로망과 함께, 떠났을 때 생기는 향수병과 귀향의 욕망 또한 만만치 않으며, 사람은 이 이중의 감정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여기에 향수를 일으키는 고향의 음식이 등장하거나, 낯선 사람들의 낯선 음식에 관한 반응은 그 음식에 익숙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영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선정적이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에 담긴 시대의 욕망을 정확히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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