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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n 09. 2019

영화 미성년

김윤석 배우의 감독 데뷔작


[영화] 미성년


잘 만든 영화.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이다. 원작은 이보람 작가가 쓴 희곡으로, 이 희곡은 연극으로 공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희곡 자체가 영화의 시나리오로 곧바로 옮겨 간 형식이다. 
원작도 여성 작가의 섬세함과 여성의 시각이 잘 반영되어 있어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여성주의 영화’로 말할 수 있다. 등장인물 가운데 네 명의 여성이 주인공이고, 두 명의 남성은 남성 일반을 상징하는 찌질하고 한심한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크게 두 줄기로 흐른다. 일을 저지른 어른들의 세계와 그것을 해결하려는 자식 세대의 흐름이다. 불륜을 저지른 것은 두 사람이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네 명의 여성과 한 명의 아이다. 남성들은 일을 저지르고 도망간다. 저질러진 일을 수습하는 것은 여성들이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도 여성이다. 나이가 들어도 철 들지 못한 어른이 ‘미성년’이고, 아직 어리지만 속이 깊은 두 여학생은 나이가 ‘미성년’이지만 그들의 내면은 이미 어른이다.
아버지의 불륜을 알게 된 주리는 엄마가 눈치 채기 전에 자신이 해결하려 한다. 마침 아버지의 불륜 상대인 식당 주인의 딸이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다니는, 그렇지만 한번도 말을 섞지 않았던 윤아라는 걸 알게 되고, 주리가 흘린 휴대전화를 갖고 있던 윤아는 학교 옥상에서 주리를 부른다. 우연이긴 했지만, 윤아는 주리의 엄마에게, 자기 엄마와 윤아의 아버지가 바람났다고 소리친다. 이제 두 가족은 심각한 상황에 휘말리고, 어른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비겁하고 미숙한 반면, 이제 고등학생인 주리와 윤아는 부모의 불륜 사건을 마치 부모가 된 심정으로 수습하려 한다. 
두 학생은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른들이 만든 사건이 아니었다면. 주리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자랐고, 공부도 이과 쪽이다.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는 대기업의 간부로 일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중산층이며 자녀는 주리 하나다. 주리의 엄마는 다른 직업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건 남편의 월급만으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돈벌이를 하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윤아는 엄마와 둘이 산다. 윤아의 엄마 미희는 윤아 나이에 윤아를 낳았다. 윤아의 아버지는 고정된 직장 없이, 찜질방 등에서 잠을 자며 도박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아의 엄마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근근히 먹고 사는데, 주리의 아버지가 이 식당에 회사 회식을 하러 왔다가 만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에 다니며 아쉬울 것 없는 주리의 아버지 대원은 식당 주인인 미희와 간통을 하고, 미희는 대원의 아이를 임신한다. 윤아의 아버지 박서방은 도박에 빠져 딸을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대원과 박서방은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남성을 대표한다. 물론, 성실하고 자상하고 책임감 있는 남성들은 논외로 하자. 아버지 또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만악의 근원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으니, 말썽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남성 일반의 전형으로 보면 되겠다.
여기서 주인공은 주리와 윤아다. 이들은 고등학생이고, 아직 법적 미성년이며, 여성이다. 부모가 저지른 사고를 이들이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성년과 미성년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 아직 어리지만 마음은 이미 다 커버린 청소년. 불륜 관계로 태어난 아기는 조산하고, 그나마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어른들은 무덤덤하지만, 주리와 윤아는 자기의 동생이 그렇게 조산아로 태어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것을 보면서 몹시 마음 아프다. 비록 불륜의 결과이긴 해도, 그 아이에게는 죄가 없고, 태어난 생명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찍 죽는 영아를 한꺼번에 수습해 화장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무런 애도를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어린 죽음은 생명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주리와 윤아는 동생의 시신을 화장하고, 그 뼛가루를 받아 대원과 미희가 만나 사진을 찍었던, 주리가 어릴 때 소풍을 왔던 유원지에 도착해 우유에 뼛가루를 넣어 마신다. 이 장면은 지나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엽기적이면서도 한편으로 두 소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보기는 힘들지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어른들도 변하겠지만, 두 소녀는 부쩍 성장할 것이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두 소녀는 서로 다른 성장과정을 거쳤지만, 좋은 친구로 오래 함께 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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