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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n 09. 2019

HBO,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진실을 알고 싶다면

[영화] 체르노빌


HBO에서 제작한 미니시리즈 5부작. 이미 널리 알려진 체르노빌--정식 명칭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노심 폭발 사건을 시간 단위로 다루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는데, 이 미니시리즈는 미국에서 만들었고, 배우들도 영어로 - 러시아 사람들인데 -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금의 러시아나 우크라이나가 체르노빌 사건을 객관적으로 영화로라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한다면, 미국에서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은 인류가 핵무기, 핵발전소를 만든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사고였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사고가 아니라, 발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시험 운영을 하다 무리한 시도로 발생한 ‘인재’라는 점에서, 자연재해로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보다 더 나쁜 경우라고 생각한다.

체르노빌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도 많고, 지금은 어느 정도 완결한 사건이라 그 전모가 비교적 자세히 알려졌지만, 이 미니시리즈를 보면, 우리가 추상적으로 알았던 사건의 본질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분명 사람의 실수로 벌어진 ‘인재’다. 사건 중심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면, 이 시기, 쏘비에트공화국연방 시절에 무능한 관료주의와 성과 제일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안전 불감증 상태로 일하는 핵발전소 실무자들의 태만한 자세 등이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실험 운전 과정에서 노심이 폭발하지만, 이들은 노심이 폭발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실무자들이 노심이 폭발한 곳에 직접 가서 - 죽음을 무릅쓰고 - 현장을 확인한 다음에야 사실은 인정한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은 자칫 쏘비에트연방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뻔한 사건이다. 폭발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두 번 일어났는데, 1호기와 2호기가 폭발했고, 3호기는 다행히 무사했다. 핵발전소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책임을 질 것을 두려워해서 첫 보고부터 거짓말을 한다. 사건을 축소하고, 방사선량 값을 터무니없이 작은 숫자 3.6뢴트겐 -실제로는 1만 5천 뢴트겐 이상 - 으로 보고하면서, 별 문제 없을 거라고 말한다. 이런 관료주의 때문에 수습은 더욱 어려워진다.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지역 소방서에서 출동하는데, 이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모른 채 불을 끈다. 초기에 화재 진압을 하려고 출동한 소방수들은 대부분 방사능에 심하게 노출되어 곧바로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암에 걸린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관련자들도 모스크바 병원으로 이송되는데,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은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진 스웨덴과 체르노빌에서 800km 떨어진 민스크의 핵물리학 연구소 연구원들이었다. 이들은 방사능 수치를 알리는 센서를 확인해 체르노빌에서 노심이 폭발했다는 것을 정확하게 추론한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과학자 간부들이 자신의 책임을 무마하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부하 직원에게 죄를 떠넘기는 파렴치한 인간들이었다면, 오로지 과학자의 신성한 의무만으로 죽음의 현장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학자가 바로 발레리 레가소프다. 레가소프는 핵물리학자로, 소련공산당 부위원장 보리스 슈체르비나와 함께 체르노빌 현장으로 향한다. 체르노빌의 실제 상황을 직접 가서 보고하라는 고르바초프의 명령을 받고 당 관료와 과학자가 동행하는 것이다. 보리스는 현장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진두지휘하고, 레가소프는 과학적 근거와 대안을 제시하며 노심 폭발로 엄청난 방사능이 유출되는 상황을 막을 방안을 제시한다.

쏘련은 ‘생체로봇’을 투입하는데, 66만 명이 넘는 군인들을 동원해 핵발전소 지붕에 있는 부서진 흑연 조각을 치우고, 광부들이 지하를 파들어간다. 이들의 행동은 쏘련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위대한 기여를 한 것이다. 물론 이 사고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암이 발병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쏘련은 이들의 희생을 공식 알리지는 않고 있다.

당시 쏘련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을 끝까지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지만, 레가소프를 비롯한 소수의 과학자들이 당중앙위원회 청문회에서 진실을 말하고, 실제로 레가소프는 증언 기록을 남기고 자살한다. 레가소프의 자살에는 KGB의 협박이 주요 원인인데, 레가소프의 출생 성분이 ‘금수저’였던 점을 감안해도, 당시 KGB가 얼마나 강력한 권력기관이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레가소프가 자살한 이후, 아무리 KGB라 해도, 체르노빌 사건의 원인을 끝까지 은폐하기 어려웠고, 쏘련 연방 안에 있는 다른 12개의 핵발전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레가소프는 말한다. 자신이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진실은 사라지지 않으며, 거짓말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다고. 레가소프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이념과 체제를 뛰어 넘어,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지켰다. 그들의 올바른 증언은 체르노빌 사건의 본질을 알리고, 더 큰 위험을 막았으며, 과학이 인류의 진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지금 한국에 있는 핵발전소의 상태는 어떤지 걱정되었다.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값이 싸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은데,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이 드라마를 꼭 보면 좋겠다. 자연재해로 어쩔 수 없는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만 해도,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의 상황이며, 최소한의 수습을 위한 비용만도 천문학적 돈이 들어간다. 또한,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고준위, 저준위 핵폐기물은 지금 기술로 처리할 수 없으니, 똥을 싸놓고 치울 수 없는 상태임에도 계속 똥을 만들어 놓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핵발전 지지, 옹호론자들은 핵발전이 ‘깨끗한 전기’이며, ‘값싼’ 전기, ‘안전한’ 전기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 말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를 꼭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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