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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l 22. 2019

[영화] 조용한 남자의 분노

[영화] 조용한 남자의 분노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살다보면 누구나 딜레마 상태에 놓이게 될 때가 있는데, 그것이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묻는다.

호세는 조용한 남자다.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작은 카페에서 일하는 한 여자, 아나에게 마음을 둔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아나의 남편 쿠로가 감옥에서 곧 출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쿠로가 감옥에 간 것은, 보석상 강도 혐의였고, 동료들은 모두 도망가고 쿠로 혼자만 잡혀 8년 동안 감옥생활을 한다. 쿠로를 만난 호세는 도망간 동료들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 이때 쿠로는 호세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아내 아나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눈치챘고,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아나)와 딸이 위험할 것을 직감한다. 결국 쿠로는 호세와 함께 보석상을 털었던 동료를 찾아나선다.

네 명의 도망친 동료들 가운데, 첫 번째 찾아간 동료는 복싱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는 여전히 불량배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우발적이긴 하지만, 강한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던 호세는 충동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쿠로와 함께 도망친다. 

두 번째로 찾아간 동료는 키도 크고 잘 생긴 인물로, 이미 결혼해서 아내는 임신을 한 상태였다. 시골의 농장에서 돼지를 키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그는, 과거와 단절하고 성실한 농부로 살고 있었다. 호세와 쿠로는 저녁 대접을 받으며 옛날의 동료로 변신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돼지농장을 보러 가자는 동료의 말을 따라 농장 구경을 하러 가지만, 그곳에서 호세는 총을 꺼내 범인이었던 쿠로의 동료를 살해한다. 이 지점이 호세의 마음에 가장 큰 갈등을 일으킨 순간이 아니었을까. 

호세는 평범한 남자였고,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 막 결혼해 임신을 한 아내를 둔 남자를 살해할 때는 그만한 동기가 있거나, 그의 내면에 숨어 있던 싸이코패스의 기질이 드러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호세는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그가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장면은 나중에 나온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인물은 뜻밖의 사람이었다. 범인이 모두 다섯 명이었고, 쿠로를 빼면 네 명이고, 2년 전, 범인 가운데 한 명이 자살했다고 했으므로 세 명이었다. 호세는 자살한 범인을 포함해 모두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진짜 범인 한 명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 드러나지 않은 범인은 바로 쿠로의 처남이자 사랑하는 여자 아나의 남동생이었다. 호세는 여기서 다시 갈등한다. 아니, 갈등했을까. 

호세의 아내는 보석상에서 일하다 범인이 휘두른 개머리판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다. 그가 가장 사랑하던, 곧 결혼을 앞둔 연인이 강도에게 처참하게 맞아 죽어가는 장면이 폐쇄회로 텔레비전에 저장되었고, 그것을 본 호세는 말을 잃고,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며 살았던 것이다.

범인들을 모두 죽이고, 쿠로를 아나가 있는 자신의 별장으로 데려다 준 다음, 호세는 떠난다. 아나는 그 모습을 눈물어린 눈으로 오래도록 바라본다. 아나는 쿠로의 아내지만, 마음은 호세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이 좀 감상적이지만,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고, 호세의 복수에 관객은 감정이입한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사적 복수'는 용인되지 않는 것이 법정신이지만, 법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워낙 제한이 많다보니, 정의를 구현하려는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분위기는 법보다 한참 앞서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사적 복수'를 용인하는 건 사회의 질서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위험이 있으므로, 공권력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려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정부의 공권력과 합법적 수단만을 믿고 의지하기에는 억울함이 너무 많은 사회 현실이다.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휘두르는 치외법권의 범법행위는 공권력을 비웃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돈과 권력으로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응징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그것이 '사적 복수'가 아닌, '사회적 복수'나 '사회적 응징'의 형태로 나타나면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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