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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Oct 07. 2019

나이트스쿨

학력 컴플렉스가 있나요?

넷플릭스. '나이트스쿨'

미국의 흑인코미디언 케빈 하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유쾌한 코미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한 청년이 17년의 시간이 지나서 꼭 고등학교 졸업 인증서를 가져야 할 절박한 상황이 발생하고, 하는 수 없이 모교의 야간학교에 등록해 공부한다는 내용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학력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 듯 하지만,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특정 대학 출신을 따지고, 학연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학연 커넥션이 잘 연결된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이건 우리나라도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요즘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의 학력 조작, 위조 사건으로 떠들썩한데, 그래도 최성해는 고등학교는 졸업한 듯 하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 뒤로 줄곧 검정고시로 학력을 이어갔다. 내 주위에는 나같은 사람이 많은데,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살던 지역이 가난한 곳이었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가난한 친구들이 살았기 때문에, 정규학교의 진학률이 매우 낮았다.

그들은 나처럼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통과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국민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부터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대학 입학시험을 칠 수 있었지만, 대학등록금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살다가 시간이 더 많이 흘러서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그런 사람에 속한다.

케빈 하트는 수완이 좋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어도 영업사원으로 재능을 인정받고, 또 실제로 돈도 잘 벌고, 멋진 여자친구도 만난다. 다만 그는 고등학교 학력이 없다는 이유로 더 좋은 직업을 얻지 못하는데, 그래서 야간학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케빈은 유능하지만, 학력 컴플렉스가 있어서 그것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능력도 있고, 미모도 뛰어난 데다 마음까지 넓어서 그런 케빈을 다 감싸주려 하지만, 정작 케빈 자신의 컴플렉스 때문에 둘 사이가 멀어진다. 영화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도 케빈처럼 멋진 여자친구를 만났고, 그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학력도, 능력도 부족한 남자를 믿고 아껴주는 여자가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케빈처럼 학력 컴플렉스는 없지만, 조금 아쉬운 건 있다. 한국은 학력 중심 사회여서, 어떤 일을 하려면 먼저 대학을 나왔는지부터 물어보기 때문에, 그 조건에 들지 못하면 아예 근처에도 갈 수가 없다. 내가 어떤 일을 잘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케빈과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도 모두 성인들로, 사회에서 저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고, 그들도 노력해서 고등학교 졸업 인증서를 받는다. 한국에도 검정고시 학원에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걸 보면,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난하거나 배우지 못한 것은 결코 죄가 아니고,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노력하면 분명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내 위로 두 분의 누나들도 검정고시를 통해 작은누나는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 큰 누나도 한글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제 읽고 쓰는 것은 막힘이 없다. 나는 두 누나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우리 가족은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가난이나 무지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나는 청년시절에 학력 컴플렉스 때문에 책을 더 많이 읽고,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늦추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위에는 늘 나보다 훌륭한 스승이-나이, 성별, 인종, 학력과 관계 없이-존재한다고 믿으며, 배우려는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믿는다.

돌아보니, 나는 일생을 독학, 스스로 배우는 것으로 일관했다. 컴퓨터도 독학으로 배웠고, 글쓰기도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 없이 혼자 썼으며, 목공, 용접, 배관도 공사장 일을 다니면서 선배들이 하는 걸 보고 눈썰미로 배웠다. 책을 읽는 것도, 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 잠깐 선배들이 도와주었고, 그 뒤로는 모두 혼자 책을 읽으면서 터득했다. 이렇게 쓰고보니 내 자랑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체계가 없고, 깊이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학문을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아마 다시 도전을 할지도 모르겠다.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내가 놓여 있는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삶은 또 코믹하지 않은가. 많이 배운 자들이 권력과 금력을 쥐고 세상을 망치고, 덜 배운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을 바로 잡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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