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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Mar 23. 2020

20002 형, 반가워

20002 형, 반가워.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는데, 가평 별장에 있었네? 별장 안에서 젊은 여성들이 시중들어 주고, 형은 참 좋겠어. 근데, 망원경으로 밖은 왜 쳐다봐? 밖에서 형 좇아다니는 신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려는거야? 아니면 형 별장 앞에 모여서 형이 운영하는 특수시설에 자의반, 타의반 들어간 자식들, 남편, 아내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가족들 보려고 그러는 거야?

형이 운영하는 특수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형을 '살아 있는 예수'라고 한다며? 그리고 형은 '영생 불멸'한다며? 다 좋은데, 형 모습을 보니까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거 같던데? 걷는 것도 지팡이에 의지해서 겨우 걷고, 형 얼굴을 보니까 합죽이처럼 보이던데, 형 틀니했지? 형 영생한다면서? 이도 다 빠지고, 잘 걷지도 못하는 데 어떻게 영생할 거야?

그렇지만, 형이 부럽긴 하다. 한국에서 몇 대 없다는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잖아. 그거 거니형 정도나 되어야 타고 다닐 수 있는 건데, 형은 가뿐하게 소나타 타고 다니듯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는 걸 보니 역시 사기를 치든, 도둑질을 하든 무조건 돈만 벌면 장땡인가봐, 그렇지?

형도 옛날에 형이 믿던 사이비종교 집단에 들어갔다가 전재산 날렸잖아. 그거 신문기사로 요즘도 돌아다니더라. 그때 형 기분이 어땠어? 사기치는 새끼들 다 감옥에 잡아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아니면, 나도 당했으니 너희들도 당해봐라, 뭐 이런 심정으로 형도 이 바닥에 뛰어든 거야? 이유야 어떻든 형은 성공했네. 가평 북한강 바로 옆에 거대한 별장을 짓고, 마이바흐를 타고 세상 부러울 게 없겠어. 그런데, 형은 참 안목은 별로인가봐. 별장이라고 지어 놓은 건물 디자인이 너무 구려. 요즘 그렇게 건축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어딨어. 엄청 촌스럽고 구리거든.


형이 오늘 진짜 넓은 마음으로 언론 카메라 앞에 나와서 기자회견했잖아. 영생한다는 형이 마스크 쓰고 나와서 말하는 걸 보니 진짜 웃기더라. 형 영생한다면서? 그리고 말은 왜 그렇게 못해?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야? 아니면 원래 말하는 모습이 그런 거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다듣지 못하겠어. 뭐, 말은 잘 못할 수 있지. 

그래도 형이 좋은 음식에다 건강에 좋다는 약을 꾸준히, 열심히 먹나봐. 하긴 영생하는 사람이 나이를 먹는 건 의미 없잖아. 형처럼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은 하루 몇 끼나 먹어? 한 이십하고도 새끼를 더 먹나? 돈 많으니까 끼니마다 쇠고기 먹겠네? 그건 참 부럽다. 나는 쇠고기 먹은 기억이 가물가물해. 형은 하루에 한 이십하고도 새끼를 더 먹을 수 있으니 역시 형은 영생하겠어.

그런데, 오늘 형이 왼쪽 손목에 찬 시계, 그거 사람들이 엄청 관심이 많던데, 그거 파텍 필립 아냐? 왜 있잖아, 시계 하나에 1억이 넘는 최고급 시계 말이야. 시계가 막 번쩍거리던데. 아냐? 누가 그러던데 그네누나 시계라고 하던데? 그네누나 시계는 어떻게 구한 거야? 지금 그네누나 국립호텔에 들어가서 국가가 건강관리 해주고 있잖아. 형하고 그네누나하고 인연이 깊어? 아, 그렇구나. 그러면 이번 기회에 형도 그네누나 옆으로 가면 어떨까? 형도 국가가 운영하는 호텔에 들어가서 국가가 잘 관리해주고, 하루 이십새끼는 아니어도, 새끼는 꼬박꼬박 잘 챙겨 주고, 건강관리도 잘 해주고,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릴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되잖아.


형을 구원자, 영생자, 예수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 꽤 많다면서? 그런데 장로교나 침례교 같은 기성 개신교에서는 형을 보고 사이비종교 지도자니, 사기꾼이니, 배워먹지 못한 놈이라고 욕하던데, 형이 그걸 참는 거 보면서, 형은 역시 대인배구나 하고 생각했어. 아니면 저런 놈들하고는 상종도 하기 싫거나, 상종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거나겠지. 왜? 형은 살아 있는 예수니까. 원래 예수도 자기 고향에서나, 살아 있을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욕을 실컷 얻어먹고, 사람들이 막 침도 뱉고, 돌멩이도 던지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형도 사람들이 형을 보고 사이비니, 개독이니, 사기꾼이니 비난해도 그건 다 형이 '살아 있는 예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다 좋은데 형이 '살아 있는 예수'로 자칭하는 건 좀 웃기지 않아? 일단 외모부터가 너무 다르잖아. 예수 그림 좀 봐봐. 미끈하게 잘 생긴 서양 백인 남성이잖아. 머리칼도 금발로 길게 기르고, 눈동자도 파랗고, 얼굴은 알랑 드롱보다 더 잘 생겼잖아. 근데 형은 뭐야, 다 쭈그렁 늙은이에, 이빨도 다 빠지고, 피부는 갈색에, 얼굴은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넙데데하고...이건 뭐 예수하고는 전혀 코드가 안 맞잖아.

그래서 말인데, 형, 우리 수술 좀 하자. 요즘 성형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지? 형이 진정한 예수도 태어나려면 외모를 싹 뜯어고쳐야 해. 주름을 없애려면 보톡스를 넣고, 피부도 하얗게 박피를 하고, 머리칼도 길게 길러서 황금빛으로 염색하고, 옷도 예수시대에 입던 '토가'를 입고, 가죽으로 만든 샌들을 신고 다니는 거야. 그러면 누가봐도 형은 '진짜 예수'처럼 보이잖아. 어때?

근데, 다 좋은데 형이 말하는 거, 그건 정말 어떻게 안 될까. 예수처럼 아람어나, 히브리어나, 코이네 그리스어를 섞어서 써야 멋있는데, 형은 아직도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는 떠벌이처럼 말하잖아. 그건 참 보기 안 좋아.


사람들이 왜 형을 영생 불멸한다고 믿을까. 그런 걸 보면 형이 참 재주가 좋아. 나는 형이 참 촌스럽고 여러 면에서 수준 이하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봐? 어쨌든 형이 운영하는 특수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온나라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녀서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잖아. 지금은 정부가 방역하고, 치료하지만 나중에 형이 나라와 국민에게 입힌 피해를 배상해야 할 걸. 그거 돈으로 환산하면 형이 가진 재산 다 팔아도 택도 없어. 형이 한순간에 거지가 될 수도 있다 이거지. 오늘 텔레비전에 나와서 큰절을 했지만, 그게 쇼라는 건 모두 알잖아. 그러니, 형이 가진 명단하고 재산 다 내놓고 국립호텔에서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는 게 어때? 내가 진지하게 조언하는 거야. 다 형을 위해서.


*이 글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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