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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Mar 23. 2020

신천지와 다단계

신천지와 다단계


오래 전, 다단계에 엮일 뻔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가 있는데 - 그 친구가 먼저 페이스북을 차단했다 - 어느 날, 2박3일 여행을 가자며 연락했다. 여행 경비도 자기가 낼테니 준비만 해서 만나자고 했다. 평소 다단계에 관해서는 전혀 말한 적도 없고, 나 역시 그 친구가 다단계에 빠졌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나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다만, 그 친구가 만나자고 한 장소가 의외였다. 녀석은 압구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보자고 했는데, 그곳은 당시 우리가 살던 마을-금천구 시흥동-에서도 매우 멀었지만, 우리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그곳에 나갔다. 녀석은 나를 어느 카페로 데리고 갔고, 그곳에서 선배를 잠깐 만나자고 했다. 잠시 뒤 어떤 남자가 들어왔고, '문화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나는 '문화운동' 쪽에서 일하고 있었고, 지금은 돌아가신 박인배 형과 함께 일했다. 그 낯선 사람도 '문화운동' 경험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 '운동'을 하던 사람은 연대의식이 있어서 일단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다시 모르는 여성이 등장했다.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문화운동'을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자고 했고, 어떤 곳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내가 아는 '문화운동'에 관해 아는 척하고, 어디론가 함께 가자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들이 다단계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 다단계 아니냐'고 물었고, 그들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합리적 의심을 통해 이들이 분명 다단계라고 확신했다. 내가 카페에서 일어나 나오자, 그들도 따라 나왔고, 나를 끌고서라도 어디론가 데려갈 움직임을 보였다.

나는 압구정 네거리-지금도 넓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단계로 나를 끌어들이려면 죽여버리겠다고. 그리고 친구였던 그 녀석에게도 쌍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떴고, 그 뒤로 꽤 오래 그 녀석을 만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서, 그 녀석은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때 자기가 귀신에 홀렸는지, 다단계에 빠졌으며 돈을 꽤 날리고 빠져나왔다고. 그런 녀석이 몇 년 전에 내가 부르주아라면서 페이스북을 차단하고, 친구로서도 인연을 끊었다.


오래 전, 10대 때 잠깐 가까운 형을 따라 순복음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가서 찬송가도 불렀고, 성경도 읽었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서 뭔가를 열성적으로 하지 못하는데, 그때는 먹고 사는 일에 쫓겨 교회를 다니는 것도 사치였다.

그러다 군복무를 하고 사회과학 공부를 하면서, 종교는 내 삶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사회과학 공부를 한 것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 그때 팀을 꾸렸던 대학생 형들이 있는데, 그들과는 삶의 궤적이 달라졌지만, 처음 그들에게서 정치경제학,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와 레닌을 배우면서 나는 사회를 구조적으로, 계급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초를 갖게 되었다.


신천지에 빠진 사람을 보면, 그 과정이 다단계와 99% 똑같다. 인간적 호의와 친밀감으로 접근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세뇌를 통해 자신들의 이론이 옳다고 믿게 만든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세뇌된다.

한번 세뇌당하면 스스로 벗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인간의 정신은 의외로 나약해서, 강력한 외부의 힘에 쉽게 조종당한다. 그래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교육보다 중요한 것이고, 교육의 핵심이 그것이어야 한다. 현 체제의 교육은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전달할 뿐이다. 

사이비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그런 기초교육의 틈새를 파고 들어가며, 인간의 나약하고 부족한 정신을 건드려 불안감을 증폭하고, 공포를 조장하며, 가능성 없는 미래와 희망을 불어넣어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을 추종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완벽한 사기이며 거짓말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거짓말을 '믿고 싶어'한다. 그것이 나약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종교 뿐 아니라, 사회에서 사기를 치는 사기범들도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매우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사람들이 가진 욕망을 건드리고,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주입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의 능력과 노력보다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중요한 것을 쉽게 얻으려는 사람은 이런 사기꾼에게 쉽게 넘어가고, 그들의 노예가 된다.

사기를 치는 놈이 가장 악질이지만, 그런 사기꾼에게 넘어가 가족과 친구를 버리고, 가족과 친구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치면서 사기꾼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단지 '피해자'가 아닌, 사기꾼에게 동조하는 공범이자 가해자가 된다. 무지와 어리석음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기도 하다.

내가 종교를 혐오하는 이유는, 반이성, 반지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현대사회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고대의 미신을 믿는 어리석고 멍청한 행위이며, 발달한 인류의 지성과 과학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신천지 교주 20002도 사이비 종교에 뛰어들었다가 교주에게 사기를 당해 교주를 고소했던 사람이다. 그 자신이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였다가 '나만 당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그렇게 번 돈으로 마이바흐를 끌고 다닐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신천지를 믿는 사람들의 롤모델이 20002라면, 그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사치를 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미래의 잠재 사이비 교주들이며, 예비 사기꾼들이다. 

국가에서 사법권을 발동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범죄 집단과 범죄자를 미리 찾아내고, 격리하기 위한 것인데, 과연 한국의 검찰과 경찰은 눈에 보이는 사이비 범죄집단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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