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니핑이 되고싶어

by maru

사실 마루는 처음부터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하고싶은 것도, 되고싶은 것도 많았지만 깊게 파고들어 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하고싶은게 없었던 걸지도 몰랐다.


오늘 마루가 괜한 생각이 드는건, 마루 앞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웃고있는 실습생의 모습에서

마루의 옛날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떠오르려던 그때,

마루는 실습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슬쩍 말을 걸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원래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아이들과 놀던 실습생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마루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대답했다.


"네. 저는 원래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졸업하면 바로 유치원에 취업하고 싶어요."


실습생은 너무 뻔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는지, 수줍어 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뒤이어 실습생이 질문했다.


"선생님도 원래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으셨어요?"


역습이었다.

마루야말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수줍어할지언정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올곧은 대답이 나왔던 실습생과 달리,

마루는 곧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실습생 앞에서 처음부터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싶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그렇다고 원해서 이 직업을 한 건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해 환상을 깰 수도 없었다.


"글쎄요?"


마루는 알 수 없는 대답으로 대화의 끝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마루는 부러웠다.

원래부터 꾸고 있던 꿈을 이루어 가고 있는, 그래서 누군가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실습생이.




-16년 전-


마루는 지금 배낭하나 달랑 메고 난생 처음 와보는 곳에 있었다.

불과 12시간 전까지만 태어나 단 한번도 떠나본 적 없는 대한민국에 가족들과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와보는 곳, 낯선 땅,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다양한 인종들까지-

눈앞에 맞닥뜨린 현실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막막함에 한숨만 깊게 쉬고 있는 마루였다.

다행히도 혼자는 아니었다. 옆에는 중학교때부터 함께했던 혜지가 있었다.

마루의 막막함을 눈치 챘는지 혜지는 일부러 더 씩씩하게 힘을주어 말했다.


"야!! 드디어 왔다!!"


혜지의 말에 마루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천천히 탐색하기 시작했다.

방금 도착한 공항에는 유니언잭이 그려져있는 국기와 함께

"WELCOME TO AUSTRALIA"

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호주에 온것이었다.

마루는 현실 감각을 돌리기 위해 깊이 숨을 들이 마셨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와 다른 특유의 공기와 냄새가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고싶은 것도, 되고싶은 것도 많았지만 어느 하나 깊이 파고들어볼 생각을 못했던 마루는

뒤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그저 성적에 맞춰서, 왠지 직업으로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이유로 입학한 대학이었다.

그런 대학에서 배우는 생소한 학자들이며, 이론들이며-

듣는 과목이 자기과목 하나뿐인줄 아는지 무지막지하게 과제를 쏟아내는 교수들까지...

휘몰아치는 날들에 이런저런 고민이 쌓여가고 있는 터였다.


'이 길이 나에게 맞는걸까.

내가 졸업을 해도 이 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내린 결론은 도피였다.

도망가자.


'혜지야, 우리 워킹홀리데이나 갈까?'


가볍게 툭 던진 한마디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결국 마루를 호주까지 오게 만들었다.


'여기서 천천히 생각해보자.

한국으로 돌아가서 뭘 하고 싶은지.'


어깨에 메고 있는 양쪽 가방끈을 더욱 바짝 쥔 마루의 호주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선샘미?! 우리 병원에 놀러와요"


잠시 옛날일을 떠올리던 마루는 윤아의 부름에 황급히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음...어쩌지? 선생님은 아픈 곳이 없는데?"


"아니에요! 선생님 배가 아파서 우리 병원에 왔다고 해요."


"그럴까? 아! 의사선생님. 배가 아파요. 여기좀 봐주세요!"


마루는 아이들의 요청에 배를 쥐며 혼신의 힘을 다해 아픈 연기를 했다.


'이럴꺼면 내가 차라리 연기자를 했지....'

싶을정도로 불태운 후, 아이들과의 병원놀이가 마무리 되어갈 때 쯤

마루는 무심코 윤아에게 물었다.


"윤아는 커서 의사가 되고 싶어?"


"아니요! 나는 커서 유투버 되고싶어요"


"그렇구나-"


마루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방황도 해보고, 하고싶은 일을 찾아 떠나도 보고, 돌고돌아 마지막에 선택하게 된 직업을 하고 있는 마루였다.

어렸을 때 부터 하고 싶은 일을 자신있게 대답하는 아이들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지만,

일견 유투버라는 대답에 마음 한켠이 심란해 지기도 하는 마루였다.

그때 마루 곁으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


"선샘미, 나는 커서 아빠가 되고 싶어요!!"


"나는 로보트요!!"


"선샘미, 나는 커서 티니핑 될꺼에요"


진지해졌던 순간들이 무색하게, 마루에게 웃음을 주는 대답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루의 작은 질문 하나에도 자신의 얘기들을 쏟아내고 싶어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래, 커서 뭐가 되는게 뭐 그리 중요하냐.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게 중요한거지!'


오늘 도담반에는

티니핑이 되고 싶은 아이들과,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은 실습생과,

무엇이 되고싶은지 몰랐던 선생님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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