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연수실의 분위기부터 다른 요일이다.
평소 같았으면 오전부터 모든 피로를 짊어진 얼굴들 이었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수많은 날들 중 하루일 뿐임에도, 금요일이면 왠지 모르게 들뜨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이상하게 화가 덜나고, 똑같은 업무를 해도 마음이 가벼웠다.
선생님들은 서로에게 더 친절하고 관대하며, 머리위로는 하트와 음표가 떠다니는 요일.
분위기도 기분도 좋은 연수실을 한껏 느끼다 보니, 문득 예전 유치원이 떠오르는 마루였다.
지금은 교사들끼리만 연수실을 사용하지만, 규모가 작은 유치원에서는 원감님과 같은 연수실을 사용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원감의 기분에 따라 연수실의 분위기가, 그날 하루의 공기가, 교사들의 하루가 달라지는 것이다.
관리자는 왜 어려운 것인가-
물론 사람좋은 원감도 있었다.
하지만, 원감이 얼마나 착한지, 친절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 좋은 원감이라고 해도, 가장 좋은 원감은 자리에 없는 원감이었다.
원감이 출장을 가서 연수실을 비운 날은, 금요일도 아닌데 들뜨는 분위기였다.
말은 안해도 괜히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가벼운날.
주인 없는 연수실에서는 괜한 농담이 오가기도 하고, 실없는 장난들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나오는 카톡방의 은밀한 대화.
'원감님도 안계신데, 우리 커피시킬까요?'
한사람의 부재로 인해 행복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 날들이었다.
문득 예전 유치원이 떠오른 마루는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 더 행복한건 어떤 느낌일까?'
기분좋게 출근을 하고 도담반 교실에 들어선 마루는, 문득 아차! 싶었다.
'혹시, 여기서는 내가 아이들에게 원감 같은 존재가 되는건 아닐까?'
마루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아이들의 장난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하고,
잔소리 폭탄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되기도 했다.
기분에 따라 아이들을 대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노력하는 마루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어긋난 행동들이 더욱 예민하게 다가오는 날이 있기 마련이었다.
'쟤도 그랬는데. 같이 그런건데'
운 나쁘게 눈에 띈 아이만 잔소리를 들어야 하기도 했다.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한번 더 웃어주자, 생각하는 마루여도 잘 되지 않는 날들이 더 많기도 했다.
마루는 괜히 생각이 많아지면서 최근 몇일을 곰곰히 되짚어 보았다.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그리고 그 끝에, 4년전 어느날이 떠올랐다.
4년 전.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때, 유행에 민감한 마루도 남들과 같이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일주일동안 자가격리를 하는동안, 보결 선생님이 마루의 반을 맡아주었다.
당시 보결선생님은 예쁘고 친절해서 아이들에게는 우주 대스타였다.
복도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몇년만에 상봉한 사람처럼 반가워 하고, 서로 안아주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자가격리를 마치고 출근하던 첫날.
그런 보결선생님과 일주일을 보낸 아이들이 괜히 신경이 쓰이고 걱정 되는 마루였다.
'그동안 보결선생님이 너무 잘해줬으면 어떻게 하지?
나를 다 까먹었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돌아온게 반갑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오히려 보결선생님이랑 있을 때가 더 좋았다고 하면...?'
아직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빈교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보결선생님이 그동안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인수인계를 해주러 빈교실에 따라 들어왔다.
복잡해진 머리속을 갈무리 하고, 그동안 고생했을 보결선생님에게 마루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저 없는동안 고생하셨어요. 아이들은 괜찮았어요?"
"별일은 없었어요. 다친 아이도, 특별한 사건도 없었어요."
"아이들이 이제 보결선생님 안들어온다고 많이 섭섭해 하겠어요"
"아니에요, 선생님! 선생님 안계신동안 아이들이 선생님 엄청 많이 찾았어요."
"에이, 괜히 듣기 좋으라고 거짓말 안해도 돼요.
평소에 제가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하는데요...
선생님이랑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됐지요, 뭐"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보결 선생님이 한쪽 벽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시선이 손끝을 따라가자 거기에는 학기초 기념으로 찍어놓은 단체 사진이
큼지막하게 프린트 되어 붙어있었다.
아이들과 마루가 다같이 함께 찍은 첫 사진이었다.
"선생님, 저 사진 안보이세요?"
"어, 우리 사진은 왜 붙이셨어요?"
"아이들이 하도 마루선생님 보고싶다고 해서, 제가 찾아서 붙여준 거에요.
아이들이 매일마다 사진앞에 가서 마루선생님 보고싶다고 했어요"
마루는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아직 회복되지 않아 아직 엉망인 컨디션 때문인지, 아이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 같은데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보고싶어 해주는 마음 때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문득 떠오른 지난날을 되새기며,
오늘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도담반 교실 속에서 다시한번 다짐해 보는 마루였다.
'나의 부재가 누군가에게 다행이거나, 행복이 되는 사람이 되지 말자'